'기관차' 박지성이 해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후반 25분 그의 슈팅이 포르투갈의 골그물을 뒤흔들었을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역시 너구나'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달려오는 그를 힘껏 껴안았다.

우승후보 포르투갈의 문전에서, 이영표에게서 날아온 공을 가슴으로 트래핑하고 수비를 가볍게 제친 뒤 침착하게 논스톱 슛으로 연결할 수 있는 강심장을 가진 선수. 전·후반 90분을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니며 찬스가 나면 항상 골로 연결하는 '폭주 기관차' 박지성(21·교토 퍼플상가)이 바로 그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TV 중계를 보면 언제나 그의 얼굴이 가장 자주 등장한다.

최전방 공격수 안정환과 나란히 서있는가 하면 어느샌가 최종 수비인 홍명보의 뒤에서 커버 플레이를 한다. 수비에 가담해 공을 빼앗으면 즉시 무서운 속도로 상대의 측면을 돌파한다.

박지성 본인 스스로도 그의 포지션을 알지 못할 만큼 잠시도 쉬지 않고 뛰어다니는 게 바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러나 축구팬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한 건 불과 1년여 전부터다. 중학교 시절 일찌감치 튀는 플레이를 보여 두각을 나타낸 같은 또래의 이천수나 최태욱·차두리 등 리틀스타들의 그림자에 가려 그저 그런 선수로 남아 있었다.

때문에 명문대나 프로구단의 부름을 받지 못해 수원공고와 명지대를 거쳐 일본의 2부리그 무명팀에 진출했다. 히딩크가 아니었다면 그는 그렇게 2류 인생을 이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장 히딩크는 그를 보자마자 그가 체력과 조직력을 중요시하는 히딩크식 축구에 필요한 적임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박지성은 히딩크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면서 히딩크호에 매번 승선했고 그때마다 한치씩 더 자랐다.

박지성의 근성은 특히 강팀들과의 경기에서 빛을 발하기에 더욱 값지다.

한국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0-5로 패한 것을 비롯, 지난해 5월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 0-5, 8월 체코에 0-5로 패하는 등 유럽의 강팀만 만나면 주눅이 들면서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한국은 이제 더이상 두려운 상대가 없다. 박지성이 지난달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몸을 날리며 멋진 헤딩 동점골을 성공시키면서부터였다.

그는 이어 월드컵 개막 직전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도 역시 동점골을 넣으며 팀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인천=특별취재단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