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 내홍은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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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 3년간 영화진흥위원회는 갈등과 파행·대립의 연속이었다. 우리 사회가 겪었던 이념적 갈등과 혼돈의 모습을 그대로 응축한 것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명분과 구호·선동과 파행이 넘쳐났다. 한국영화가 유례없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사이, 그 이면에서는 유례없는 파행과 시행착오, 그로 인한 극단의 불신과 반목이 이어졌다. 영화진흥위원회는 그것의 중심지였다."

최근 발매된 월간지 『에머지』 6월호에 실린 조희문 교수(상명대)의 글 중 한 토막이다. 조 교수는 제1기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부위원장을 지냈다.

영진위는 영화업무를 민간에 위임한다는 결정에 따라 1998년 설립된 기관. 기금이 1천5백억원에 이르는 영화진흥금고를 운영하면서 제작 지원작 선정은 물론 예산 편성·미디어 교육 등 영화정책의 중추를 담당한다.

그러나 1기 위원회는 신세길-박종국-유길촌 등 3년간 위원장이 세 명이나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을 뿐 아니라 조희문 교수와 이용관 교수(중앙대)가 부위원장직을 놓고 법정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또 지난 연말에는 유길촌 전 위원장에 대해 위원들 일부가 불신임 운동을 펴는 등 시종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3년을 보냈다.

조교수는 이런 난맥상의 원인을 위원회 내에서 일부 세력들이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조교수는 위원회 내에서 소수파였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자기비판적이고 반성적인 발언이라고만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1기 위원회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반면교사나 다름없다"는 그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손사래를 칠 일만도 아닌 듯 싶다.

어쨌든 이미 지난 일. 이제는 지난달 말 출범한 제2기 위원회가 모범적인 활동을 보이길 기대할 수 밖에 없다. 다행히 9명의 신임 위원들은 호선을 통해 이충직(45) 중앙대 교수를 만장일치로 위원장에 선출했다. 잡음없이 위원장을 선출했다는 것 자체가 청신호로 읽힌다. 한국영화가 르네상스를 구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지금, 영진위가 엄정함과 균형감을 잃는다면 영화인은 물론 관객들 볼 낯이 없게 될 것이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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