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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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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월드컵 대회가 중반전으로 접어들었다.미국전의 무승부로 아쉬움이 남지만 우리는 승부를 떠나 이미 세계에 여러 승전보를 전해주고 있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우리가 63억 인구가 주목하는 인류 최대 제전을 주최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는 뿌듯함을, 세계인에게는 경이로움을 던져주는 것이다.

축구에서 배우는 지도력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앞을 향해 달리기만 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그동안 흘린 땀과 눈물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남다른 감회와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이번 월드컵 대회는 단순한 축구의 제전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다.

1986년 아시안 게임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해냈다'는 자부심을 느꼈던 우리는 2002년 월드컵 대회를 통해 '새롭게 도약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미국과 무승부를 기록, 아직 16강을 확정짓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폴란드전에서의 승리를 통해 월드컵 본선 도전 48년 만의 첫승을 일궈냈고, 우리의 도전정신은 다시 한번 힘차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대회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재삼 확인했다.

첫째는 한국인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이다. 외국인들은 한국인과 한국 사회를 다이내믹하다고 한다. 전국토가 영원한 공사장이고 도시교통은 카오스 그 자체지만 해가 다르게 변모하고 성장하는 모습에서 한국인 속에 잠재한 무서운 힘과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지리멸렬하던 한국 축구가 짧은 기간에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인이 지닌 잠재력은 충분히 증명된다.

둘째는 지도자의 중요성이다. 잠재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이를 이끌어내 가시적인 경쟁력으로 현실화시켜야만 무서운 힘과 능력이 된다.

이는 축구에만 해당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국가라는 배의 방향타인 정치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만약 우리 국민이 좀더 현명하고 능력있는 지도자들을 만나왔더라면 대한민국의 현 주소는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셋째는 지도자는 물론이고 온 국민이 상식·원칙·시스템을 중히 여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한국 축구의 놀라운 성장은 연줄이나 인정에 얽매이지 않고 뽑혀야 할 선수가 뽑혀야 한다는 상식,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선수는 가차없이 도태된다는 원칙, 길게 내다보고 잔기술이 아닌 팀워크와 체력 향상에 전념하도록 시스템을 중히 여기는 지도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셋째는 확고한 목적을 향해 일관성 있게 밀어붙이는 추진력이다. 그때그때 여론을 좇아 원칙을 바꾸고, 임기응변식으로 시스템을 무시하는 포퓰리즘은 무책임할 뿐 아니라 목적 달성도 어렵다.

여론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체력단련을 위해 미련스러울 정도의 훈련을 거듭해온 한국팀과 그 감독의 지도력은 그래서 더욱 값진 것이며, 만의 하나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게 안겨준 의미는 참으로 큰 것이다.

정치시스템·원칙 세워야

이번 월드컵 대회와 한국 축구의 성장을 통해 우리 정치인들도 많은 것을 느꼈으리라 믿는다. 심판의 눈을 속여 온갖 반칙을 저지르고 꼼수와 변칙으로 일관하는 선수와 같은 정치인들, 관중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제 몸값과 이익만을 생각하는 선수와 같은 '권력 제조 기술자'들에겐 레드 카드를 안기고 한국의 정치인들은 근본적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한 의원 꿔주기 같은 꼼수, 상식을 무시한 오기와 독선의 정치, 시스템을 무시한 편중 인사와 낙하산 인사, 내 사람 심기 등으로 정치판의 시스템을 어지럽힌 지도자들은 국민과 국가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나라 발전의 발목을 잡아왔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제 한국인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은 상식·원칙·시스템이 존중되는 정치에 의해 현실로 표출돼야 한다. 대한민국은 미래 세계의 중심국가로 우뚝 설 수 있는 가능성을 얼마든지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 대회는 한번의 축구 제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소중한 계기를 마련해 줬다는 점에서 더욱 값진 것이며, 그 진정한 메시지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업그레이드 코리아! 뉴 스타트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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