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시와 삶이 만나는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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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육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섬은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고립돼 있는 그곳은 무언가 신비를 간직한 듯 싶기도 하고 시끄러운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조용한 안식처같기도 하다. 섬은 유토피아의 이미지를 지녔다. 중국의 동방에 있다고 믿어온 삼신산은 사실 산이 아니라 봉래·방장·영주라고 불리운 세 개의 섬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섬들에는 금과 은으로 만든 궁궐이 있고 신선들이 날아다닌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이어도라는 환상적인 섬에 대한 전설이 있다. 제주도 남쪽 먼 바다에 있다는 이 섬 역시 물산이 풍부한 낙원으로 상상됐던 것이다. 그런데 뭍과 제주도와 이어도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흥미있는 결론이 나온다. 뭍에서 볼 때 제주도는 영주라고 불리운 낙원이었다. 그런데도 제주도 사람들은 이어도라는 꿈의 섬을 또 다시 빚어냈다. 이렇게 보면 섬에 대한 낙원의 이미지는 다분히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섬은 육지 사람들의 소망이 투영된 장소인 것이다. 왜 홍길동과 허생은 율도국이나 낯선 섬에 가서 이상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는가? 섬, 그것은 미완의 욕망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섬에 대한 상상력을 이렇게 욕망의 심리학으로만 환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세속으로부터 격절됐기에 간직할 수 있는 수려한 풍광, 기이한 사물, 순박한 인심 등은 뭍의 욕망과는 상관없이 섬 자체가 지닌 아름다운 자산이고 이 자산은 우리에게 조건 없는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바람, 이 바람 속에서 섬에 대한 상념은 마침내 시가 된다.

이생진 시인의 산문집 『걸어다니는 물고기』(책이 있는 마을, 2000)를 읽는 즐거움은 여느 문학작품을 감상할 때와 다르다. 여기에서는 시와 산문과 그림, 그리고 섬이 하나로 녹아 있다. 섬에 대한 우리의 온갖 상상은 시인의 독특한 안광(眼光)을 통해 시로, 산문으로, 그림으로 다시 빚어진다. 고희(古稀)를 이미 넘긴 노시인은 충청남도 서산의 바닷가에서 태어나 평생 섬과 섬을 떠돌며 시를 써 왔다고 한다. 브르통은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라고 갈파한 바 있지만 이 시인은 일찍이 이러한 이치를 터득했다. 스스로 말하길 "걸어다닐 때 진짜 삶을 느낀다"는 그는 언제나 화첩을 갖고 섬 여행을 한다. "섬에 가면 시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섬에 대한 편력은 모든 섬의 고향이요, 어머니인 제주도로부터 물에 뜬 배처럼 흔들리는 가의도, 호화 여객선처럼 들떠 있는 흑산도, 역사가 살아 숨쉬는 거문도 등을 거쳐 한 편의 시 또는 영화 같은 청산도에 이르러 멈춘다.

서해 바다의 섬들은 중국과 관련된 전설을 많이 담고 있다. 필자가 알기로 태안군의 가의도는 한(漢) 나라 때의 명신 가의(賈誼) 혹은 그의 후손이 왔었다는 전설이 있고 가끔 일기예보에 '먼 바다'로 등장하는 격렬비열도는 산둥반도에서 개짖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중국에 가깝다는 곳이다. 어렸을 적 이러한 소문을 들었을 때 서해의 이 외딴 섬들에 대한 아득한 동경으로 얼마나 마음이 설레었던가! 시인은 가의도에서 3년 전에 묵었던 민박집 내외가 여전한 것을 기뻐하고 술을 끊기 위해 꽃을 심는다는 팔십 노인을 찾아간다. 항아리 속처럼 조용한 가의도의 달밤을 보내며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한밤에 혼자 나와 오줌독 앞에서 달을 본다/ 어느 여인의 얼굴이 저리 고울까/ '예뻐라'하는 소리 누가 들었을까/ 바닷 바람 모두 좁은 대밭에서 잔다." 서해의 끝에 있는 격렬비열도는 고독의 섬이다. 일제 때 중국으로 가는 배를 얻어 타기도 했다는 이 섬은 이제 무인도가 돼 등대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 시인은 이 섬에서 사강의 고독과 카뮈의 실존을 떠올리며 삶과 문학의 의미를 궁구(窮究)한다.

『걸어다니는 물고기』, 이 책은 실로 섬으로서 시를 말하고 시로서 섬을 말하면서 노시인의 삶과 문학을 풀어나간다. 곳곳이 배치된 시인 자신이 그린 담박한 풍경의 스케치 또한 시인의 소탈한 의경(意境)을 말해주는 듯 하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는 귀양길에 아름다운 섬 보길도를 발견한다. 후일 귀양에서 풀리자 그는 보길도를 자신만의 낙원으로 만들었다. 부용동과 금쇄동에 그림같은 집과 정원을 짓고 음풍영월(吟風詠月)하면서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보길도를 방문했을 때 뜻밖에도 흔적만을 겨우 남긴 그의 유적을 보며 섬사람들에게 과연 윤선도는 어떤 존재였을까 하는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 평화롭게 살던 그들에게 서울의 권세가는 날벼락이 아니었을까? 아마 윤선도의 낙원을 조성하기 위해 그들은 힘든 노역을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보길도 앞의 노화도라는 섬의 별칭이 노예섬(奴兒島)이라는 사실은 묘한 아이러니이다.

섬, 그것은 우리에게 쉽게 낭만과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에 비례해 섬이 지닌 삶과 현실의 두께를 감지해 내기란 쉽지 않다. 이 책은 흔치 않게 이 두 가지 측면을 감동 깊게 보여준다.

<이화여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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