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만이 러시아를 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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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중앙·남아시아 정상회담을 마친 장쩌민(江澤民)중국 국가주석이 이번 주 곧바로 러시아를 찾은 것은 러시아·서방세계와 중국이 이슬람 무장세력에 공동 대처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출범시킨 '상하이 협력기구(일명 상하이 그룹)'는 역내 테러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기구로,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자국군을 중앙아시아에 주둔시킨 것과 관련이 있다.

러시아는 지난달 말 미국과 전략핵 감축협정을 체결했고, 1990년대 이후 동유럽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끌어들여온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사실상 준회원으로 가입했다. 러시아의 이같은 변화에 호응해 서방세계는 러시아 정부의 체첸반군 소탕을 묵인하게 됐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은 중앙아시아에서 군사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신 자국내의 반중국 감정을 누그러뜨렸다. 국제사회가 테러와의 전쟁을 자국에 유리하게 이용해온 셈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과거 어느 때보다 원만해진 서방세계와의 관계를 보다 건설적으로 국내 정치·경제에 활용하고 있다. 푸틴은 비교적 안정된 국내 기반을 구축해왔지만 외교무대에서는 거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는 미국이 발트3국과 중앙아시아, 심지어 대립관계에 있던 이란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푸틴은 자신의 정치생명이 경제회생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그는 옛 소련의 산업붕괴 이후 98년 루블화 평가절하와 석유가격 폭등 등으로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 러시아 경제는 99~2001년 사이에 6%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현재 러시아의 경제성장은 주춤거리고 있다. 종전의 성장률이 지속되려면 외국자본 투자와 무역거래가 필수적이다.

지난 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 정식으로 시장경제 지위를 부여했다. 91년 옛 소련 붕괴 후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을 추진해온 러시아로서는 국제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동안 러시아에 대한 투자는 자원과 풍부한 소비재 등 거대한 잠재성에도 불구하고 경제회복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했다. 러시아의 기업들은 한계상황에 다다랐다. 세계은행은 석유가의 하락 등을 이유로 러시아의 성장률을 4~6%로 전망하고 있으며, 몇몇 전문가들은 1~2% 후퇴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내놓고 있다.

향후 러시아의 안정은 해외로부터의 투자에 달려 있다. 조만간 약 1천3백억달러로 추정되는 외국자본이 러시아에 투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관료주의와 권력투쟁, 독재에 대한 우려 등은 전세계 기업들의 대(對)러시아 투자에 여전히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 근대화를 이루지 못할 경우 러시아의 유럽 관계는 불편해질 것이다. 극동지역 개발에 실패한다면 과거부터 영토문제로 마찰을 빚어온 중국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러 불투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분명 러시아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앞으로 러시아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열쇠는 이슬람이나 기타 정치·외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러시아에 투자하게 될 유럽이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리=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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