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한국산 제품 해외시장 뚫는 노하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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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LG전자는 지난 9월 중동시장에 '대추야자 냉장고'를 선보였다. 대추야자가 중동인의 기호식품인 데다 이를 숙성해 먹는 점에 착안해 개발한 것이다. 수백㎏의 대추야자를 연구실에 갖다 놓고 김치냉장고 기술팀을 불러 머리를 맞댔다. 1년여의 시행착오 끝에 야자를 영하 25도로 급속냉각하면 대추야자 맛을 여섯 달 동안 유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대추야자 냉장고는 출시 넉달 만에 20만대 가량 팔리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 회사는 또 섭씨 54도에서도 작동되는 '트로피칼' 에어컨과 메카의 방향을 가리키는 휴대전화 '메카폰'도 최근 내놨다. 이런 제품들을 내세워 LG전자는 중동.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수출량을 매년 30% 이상씩 늘리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남아공.파키스탄 등지에서 가전브랜드 1위 업체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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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현지 사정에 맞춰 생산한 한국산 제품들이 해외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무역협회의 무역연구소는 26일 현지화에 성공한 제품의 특성을 분석한 '10국10색의 제품 차별화 전략'이란 책자를 펴냈다.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자물쇠 냉장고'는 하인이나 어린이의 냉장고 사용을 제한하는 제품으로 대우의 중동지역 수출 냉장고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 대우는 켜자마자 코란 기도문이 자막으로 나오는 코란TV와 파란색을 좋아하는 현지인에 맞춰 시청하지 않을 때 브라운관이 파랗게 보이는 블루 TV도 시판 중이다.

국내 시장에서 잘 팔리는 현대자동차의 소형차 '비스토'는 원래 인도시장을 겨냥해 개발된 '상트로' 모델을 조금 개량한 것이다. '상트로'는 습한 인도의 날씨를 고려해 엔진 쿨링 기능을 강화했다. 또 사람을 꽉 차게 태우고 다니는 인도인의 운전습성과 현지 도로사정이 안 좋은 점을 감안해 충격완화 장치를 보강했다. 그 결과 상트로는 인도 국민차인 '마루티'에 이어 소형차 시장점유율 2위를 달리고 있다. 이 차량은 특히 현대차의 이미지를 크게 높였다. 인도 승용차 시장을 통틀어 1998년 3%에 지나지 않던 현대차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엔 20%까지 올라갔다.

현대차 관계자는 "인도인들은 낡은 모델을 들여와 판매할 경우 수익성만 추구하는 기업으로 쉽게 오인해 인도시장만을 겨냥한 새 차 개발전략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동원F&B는 '김치맛김'과 '와사비김'을 일본 식품매장의 술안주 코너에서 팔고 있다. 일본의 김 소비자들이 김을 반찬 이외에 술안주와 간식으로 먹는다는 점에 착안한 마케팅이다. 매일유업은 중동인이 좋아하는 디자인으로 포장한 분유와 이유식을 중동시장에 수출하고 있다. 이 제품은 올 한해 500만캔 이상 중동지역에서 팔렸다. 두산은 까다로운 일본 소주 소비자들을 의식해 좌우 어느 쪽으로 돌려도 잘 따지는 뚜껑이 달린 소주를 만들기도 했다. 무역연구소 조유진 연구원은 "현지인 입맛에 맞는 제품 개발 못지않게 마케팅도 차별해야 현지시장을 파고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LG전자가 러시아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전자레인지 요리교실'을 열고 진로가 한식당을 직접 차려 단골손님의 입소문이 나게 하는 구전 홍보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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