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2패 '집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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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카메룬이 사우디아라비아를 탈락시키는 데는 한골이면 충분했다.

독일에 0-8로 대패한 '만만한' 사우디를 맞아 카메룬은 대량 득점을 노린 듯 초반부터 거세게 나왔다. 혹시 나중에 골 득실차를 따질 경우를 대비하면 많은 득점을 해야 했다. 그러나 카메룬은 기술도 있고 스피드도 있었지만 독일이 사우디아라비아의 혼을 뺐던 '힘'과 '높이'가 없었다. 1m93㎝의 양커도,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는 클로제도 없었다.

높이만 뺀다면 사우디도 그렇게 호락호락 함락될 팀이 아니었다. 유난히 측면돌파를 많이 시도한 전반 카메룬의 크로스는 대부분 문전에서 사우디 수비수의 머리에 걸렸다. 오히려 사우디가 골 욕심에 전진한 카메룬 수비수 뒤를 노리는 롱패스로 상대를 괴롭혔다.

사우디는 전반 9분 오베이드 알도사리가 날카로운 헤딩슛을 날렸다. 관중들은 "사우디, 사우디"를 연호하며 약자를 응원했다. 전반 32분 주포 알도사리가 허벅지 근육통으로 실려나갔지만 대신 들어온 알하산이 오히려 사우디의 공격을 더 매끄럽게 했다. 42분 알하산이 수비수 뒤로 빠지는 절묘한 스루패스를 내주자 알테미아트가 오른발 슛, 볼은 왼쪽 골포스트를 살짝 벗어났다. 전반 종료 직전에도 하프라인에서 넘어온 볼을 잡은 알테미아트가 날린 회심의 오른발 슛도 골대를 외면했다.

카메룬은 전반 43분 로렌이 헤딩슛을 네트에 꽂았으나 이미 오프사이드가 선언된 뒤였다.

후반 들어 카메룬은 적극적으로 가운데를 파고드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후반 7분 살로몽 올렘베가 절묘한 중앙돌파로 만들어준 기회를 에토오가 '홈런 볼'로 날려버렸다. 그러나 에토오는 후반 21분 찾아온 또 한번의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센터서클 오른쪽에서 레이몽 칼라가 찔러준 볼을 수비 사이로 파고든 에토오가 잡아챘다.골키퍼와 맞선 에토오는 침착하게 오른발로 사우디 골문을 열었다.

이날 최고의 선방을 했던 아시아 최고의 수문장 모하메드 알데아예아도 꼼짝하지 못한 골이었다.

실점한 뒤에도 사우디는 만회하기보다는 더 이상의 골을 안 먹겠다는 소극적인 플레이를 했다. 카메룬은 한골로는 성에 안 찬다는 듯 현란한 개인기를 과시하며 여러 차례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주심이 길게 휘슬을 불었다.월드컵 3회 연속 진출에 빛나는 '아시아의 맹주'의 쓸쓸한 퇴장을 알리는 신호였다.

사이타마=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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