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잡이는 아무나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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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스타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얻는 게 아닌 모양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대회를 빛낼 보석 같은 존재들로 진작부터 점쳐진 축구 강국의 일류 골잡이들이 초반부터 맹활약하며 지구촌 축구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반면 한 방씩을 갖춘 다크호스로 여겨졌던 중위권 팀들의 골게터들은 아직까지 몸이 덜 풀린 모습들이다.

지난 3일 오후 울산 문수경기장을 찾아 브라질-터키전을 관전한 축구팬들은 후반 5분 탄식에 가까운 감탄사를 흘렸다. 터키 진영 미드필드 왼쪽에서 왼발의 달인 히바우두가 그림같이 감아준 크로스를 문전으로 뛰어들던 호나우두가 몸을 던져 마치 태권도의 이단옆차기라도 하는 듯한 동작으로 공의 방향을 바꿔 골을 뽑아냈기 때문이다. 페널티 지역 앞에서 터키 수비수들에 둘러싸여 있던 호나우두가 히바우두의 크로스를 예측하고 문전으로 치고 들어가 몸을 날리는 동작에 군더더기라고는 없었다.

같은 날 이탈리아의 스트라이커 비에리도 에콰도르전에서 몸값을 증명했다. 전반 7분 에콰도르의 골네트를 찢어놓을 듯한 강슛으로 선제골을 뽑았던 비에리는 27분 두번째 골에서는 권투선수 출신다운 파괴력을 선보였다.

골키퍼만 남아 있는 에콰도르 문전으로 치고들어가는 비에리에게 에콰도르 수비수가 몸싸움을 시도했지만 체급이 달랐는지 살짝 부딪치고도 제풀에 넘어지고 말았다.

아르헨티나의 득점기계 바티스투타도 나이지리아전에서 결승골을 뽑아 죽음의 조 F조의 저승사자 역할을 했고, 잉글랜드의 플레이메이커 데이비드 베컴은 스웨덴전 전반 캠블의 머리에 정확히 얹히는 코너킥을 쏴올려 오른발의 명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반면 파괴력에서 일류 골잡이들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온 중위권 팀들의 공격수들은 아직 활약이 미미하다.

한국의 본선 첫승 제물이 된 폴란드의 흑진주 에마누엘 올리사데베는 4일 한국전에서 홍명보·최진철 등의 자물쇠 수비에 발이 묶여 익히 알려진 스피드와 테크닉을 보여주지 못했다.

호나우두·비에리와 함께 이탈리아의 인터밀란을 이끌고 있는 우루과이의 플레이메이커 레코바는 덴마크전에서 현란한 개인기와 스피드로 수비진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평가는 냉정했다. 경기 후 덴마크의 모르텐 올센 감독은 "레코바가 특히 위협적이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지나치게 개인 플레이에 치중하는 레코바의 존재가 우루과이 전력의 장점이자 약점이었다"고 지적했다.

경주=신준봉 기자

호나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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