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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킨 아일랜드 '구세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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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것이 축구다. 이래서 축구는 사람을 미치게 한다.

후반 45분이 이미 지나고 인저리 타임도 거의 다된 시간. 아일랜드가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독일 문전을 향해 높이 볼을 올렸다. 후반 교체투입된 닐 퀸이 헤딩으로 볼을 가운데로 떨어뜨렸다. 순간 로비 킨이 비호처럼 그 공을 나꿔채 수비 한 명을 제치고 문전으로 돌진했다. 골키퍼 올리버 칸과 맞선 상황. 킨의 오른발이 번쩍였고 볼은 오른쪽 골대를 맞고 윗그물을 타고 흘렀다.골이었다. 기쁨을 못 이긴 킨이 텀블링을 한 바퀴 하고도 모자라 그라운드에 나뒹굴었다. 수천명의 아일랜드 응원단이 미칠 듯 환호하는 바로 그 앞이었다.

곧이어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렸다. 이 순간만큼은 우승팀이 부럽지 않았다. 아일랜드 선수들은 응원단 앞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환희의 순간을 만끽했다. 독일 응원단은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녹색군단 아일랜드가 독일과 1-1로 비겨 2무승부를 기록, 16강 진출에 한 가닥 구명줄을 남겨 놓았으며 독일은 1승1무로 조 1위를 지켰다.

아일랜드는 독일에 여덟골을 헌납한 사우디아라비아와는 달랐다. 아일랜드의 마이클 매카시 감독은 "우리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니다. 우리가 유럽 예선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던 네덜란드나 포르투갈보다 독일이 강한가"라고 반문했다. 전반 초반까지는 매카시 감독의 호언이 들어맞았다. 미드필드부터 강하게 압박하는 아일랜드의 수비에 독일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개리 브린과 스티브 스톤턴의 중앙수비는 1m93㎝의 카르스텐 양커와의 헤딩 경합에서 밀리지 않았다. 아일랜드의 포백은 하프라인 근처까지 밀고 올라와 독일에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한 방은 극성스러운 아일랜드 응원단을 잠시 침묵시켰다. 전반 19분 미하엘 발라크가 미드필드 왼쪽에서 문전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골키퍼 셰이 기븐이 나올듯 말듯 주춤거렸다. 그 틈을 타 클로제가 방아찧듯 헤딩슛을 날렸다. 볼은 뒤늦게 몸을 날린 기븐을 피해 왼쪽 네트에 꽂혔다.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클로제의 이번 대회 네번째 골이었다.

후반은 아일랜드의 일방적인 공세였다. 그러나 독일은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다. 두 차례 찾아온 결정적인 위기도 골키퍼 칸의 신들린 듯한 선방으로 잘 넘어갔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인저리 타임에 터져나올 드라마를 준비하기 위한 잘 짜인 시나리오에 불과했다.가시마의 밤하늘에 아일랜드의 녹색 함성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가시마=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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