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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기업 DNA 달라졌다] 획일·수비·모방서 유연·도전·창조로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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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매출 63조원→118조원, 영업이익 5조9000억원→14조~15조원.

삼성전자의 2007년 실적과 올해 추정치(본사 기준)다. 불과 3년 만에 이렇게 커졌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글로벌 금융위기, 삼성전자엔 글로벌 1등으로 올라서는 기회가 됐다. 삼성전자만이 아니다. 현대·기아자동차, LG전자, 포스코 등 한국의 대표기업들은 금융위기를 글로벌 초일류 기업 대열에 합류하는 기회로 적극 활용했다.

현대·기아차는 프리미엄 승용차 메이커로 발돋움했다. 세계 최대 격전장인 미국시장 점유율이 6월에 8.5%에 달했다. 사상 최고치다. LG전자는 TV에서 소니를 제친 데 이어 냉장고·세탁기 등 생활가전 부문 세계 1위가 됐다. 포스코는 중국의 거센 견제 속에서도 세계 4위(조강 생산량 기준)로 올라섰다.

지난해 대표기업들의 선전을 두고 ‘환율 효과’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원화가치 하락으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덕을 톡톡히 봤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화가치가 강세로 돌아선 올해는 힘들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올해 한국의 대표기업들은 지난해보다 실적이 더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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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두 차례의 위기(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대표기업들의 DNA가 달라진 결과라고 진단한다. 획일·수비·안전·모방 위주였던 DNA가 유연·공격·도전·창조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대표기업들의 기초체력이 한 단계 높아진 데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경을 넘어 유연하고 공격적으로 경영한 결과”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추종자(follower)’에서 ‘선도자(leader)’로 변신 중이다. LED TV와 3D TV 등을 세계 최초로 내놓았고, 반도체 D램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애플에 뒤진 것을 따라잡을 수 있느냐가 고비가 될 전망이다.

현대·기아차는 ‘하면 된다’는 특유의 뚝심에 감성을 덧입혔다. 디자인과 브랜드 파워 강화에 회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차를 비롯한 신제품 시장에서 1등 품질 달성이 과제”(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다.

SK의 DNA는 내수 위주의 안정에서 성장으로, 1등 산업(에너지·통신)을 지키는 수비에서 공격으로 변이가 일어나고 있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주력사인 SK텔레콤의 영업이익이 갈수록 줄어드는 등 정체를 맞은 그룹의 성장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가 숙제”라고 말했다. LG는 2차전지에서의 성공을 밑거름으로 도전 DNA가 확산되고 있다. 당장은 스마트폰에서 나타나고 있는 실패를 극복해야 한다.

롯데는 보수적 DNA를 뜯어고치는 수술이 한창이다. ‘글로벌’과 ‘혁신’을 화두 삼아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내수 위주의 DNA를 벗어나는 게 관건이다. 포스코는 ‘철의 제국’에서 철강 외길을 버리고 ‘글로벌 종합소재 왕국’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상렬·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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