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로 막가는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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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말 제정신으로 하는 말들인가. 정치 현장에서 오가는 말을 듣노라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험구(險口)나 저질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청소년들이 배울까 겁난다. 사실을 적시할 필요가 있으나 예를 들기조차 낯뜨겁다. 원체 험악해 활자화하기가 주저될 정도다. 그럼에도 명색이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국민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른 채 외쳐대니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최근의 막말 난무엔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의 책임이 크다. 회자되는 '깽판'도 한 예다. 이미 본란에서 지적했듯 '깽판'은 그 자체의 비속성과 '남북 관계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판단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비판을 수용하기는 고사하고 한술 더 떠 반복하는 자세는 온당치 않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맞대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를 '마피아 두목'으로 몰아붙이고 '양아치''쪽팔려'라는 천박한 용어를 서슴지 않는다. 이런 식의 말들로 일부 젊은층의 호기심을 끌 수는 있겠지만 국가 최고 지도자가 습관처럼 입에 담을 단어는 아니다. 행여 선거 전략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말이 바르고 깨끗하지 못한 지도자는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

한나라당도 비판받을 구석이 여럿 있다. 후보가 참모의 조언만 듣고 '빠순이' 운운한 것은 경솔한 일이다. 이규택 원내총무 같은 이는 여전히 '새천년 미친년당' 같은 조악한 단어를 구사했다. '몽매정권''욕설병''조직 폭력배' 등도 있다.

중앙 정계 지도자들이 저급한 막말을 내뱉고 인신 비방을 일삼으니 지방선거 후보들도 이를 본뜨는 모양이다. 유권자없는 썰렁한 유세장이 월드컵 때문만이 아니라 이런 구토증 나는 정치인들의 행태 탓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국민을 어떻게 보기에 이런 식의 작태를 연일 거듭하는가. 이러고도 지도자를 자처하고, 표를 달랠 염치가 있나.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닌, 의식 구조와 자질을 드러내는 사회적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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