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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투여와 정신치료 병행해야 재범 낮출 수 있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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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호 08면

최근 어린 여자아이들을 상대로 한 성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교회 화장실, 학교 운동장·교실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어린 자녀가 있는 부모들이라면 기겁할 노릇이다. 지난주 공주치료감호소장에서 퇴임한 필자는 2008년 12월 성범죄 예방대책의 하나로 성범죄자에 대한 치료감호제가 처음 도입될 때 소장으로 있었다. 치료감호제는 당시로선 형사사법의 패러다임을 처벌에서 치료로 바꾸는 획기적인 제도였다. 공주치료감호소에 성도착증 환자를 위한 인성치료재활센터가 신설됐고 성폭력범을 대상으로 인지행동치료와 정신치료를 병행·실시했다. 현재 성범죄자 30명이 이곳에 수용돼 치료받고 있다. 그 이후, 지난달 29일 성폭력범 교화 분야에서 큰 진전이 있었다. 보다 강력하고 직접적이고 확실한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성호르몬 치료법인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화학적 거세법’ 성범죄 예방효과 가지려면

필자는 1989년 미국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사법정신의학을 공부하면서 약물치료를 직접 경험했다. 당시 소아성 기호증 환자였던 23세의 백인 남성은 여아를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형기를 마쳤지만 보호관찰이 이어졌다. 그는 수퍼마켓에서 일하면서 이 대학 정신과 치료와 약물치료를 동시에 받았다. 보호관찰관은 ‘프로게스테론’이라는 황체호르몬을 근육 주사하고 그 치료 결과를 법원에 보고했다. 보고 내용은 병이 거의 치료됐다는 것이었다. 미국 오리건주에선 2000~2004년 사이 가석방된 성폭력범 134명 중 화학적 거세요법에 응한 79명과 불응한 55명의 재범률을 비교하는 연구를 했다. 그 결과 79명의 재범률은 0%였고 55명의 재범률은 18.2%로 나타났다.

필자는 2008, 2009년 연달아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를 찾았다. 저명한 성범죄자 치료 전문의사인 닥터 베르린과 만나 약물치료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 인터뷰하고 토론했다. 베르린의 환자들은 성폭력 전과자들이다. 매주 목요일 오후 6시면 직장에서 퇴근한 20여 명이 이곳에 모인다. 2시간에 걸쳐 인지행동치료인 집단정신치료를 받는다. 4주에 한 번씩 ‘데포 루프론’이라는 호르몬 약물을 어깨 근육에 주사로 맞는다. 20년 전에는 여성호르몬인 ‘데포 프로베라’를 직접 주사했으나 남성의 여성형 유방, 골다공증, 혈전증 등 부작용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은 ‘데포 루프론’이라고 하는 황체 형성 호르몬 방출 호르몬(LHRH)을 주사한다. 여성호르몬 생성을 유도해 상대적으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생산을 감소시키는 방식이다. 과도한 성욕과 성적인 공상을 억제시켜 부작용은 줄이고 치료 효과는 극대화한 것이라고 한다.

호르몬 약물치료는 성범죄자에게 나쁘지 않다. 병적인 이상 성욕의 증상을 고칠 수 있다. 장기간의 구금 대신 사회 및 직장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영구적으로 성기능을 상실케 하는 것이 아니어서 언제든 회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 이 제도를 정착시키려면 넘어야 할 산이 적잖다.

우선 전국적으로 유기적인 치료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약물치료 방식에 대한 교육 기회를 확대, 보건의료업계 종사자들의 동참을 이끌어 내야 한다. 정부에선 호르몬 주사약값·치료비 등 예산 확보를 잘해야 한다. 다행히 초기 비용은 많지 않다고 한다. 교도소 수감자 1인당 직간접 비용이 연 1200만원가량인 데 비해 약물치료는 연 300만원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성범죄 치료 전문가 확충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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