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이라도 지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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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는 6·13 지방선거에 나선 현직의원은 모두 4명이다. 이들은 겸직 출마를 금지하는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라 의원직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의장단 선출을 비롯한 원구성이 지연되면서 사직서가 후보등록 마감일까지도 처리되지 않는 바람에 적지 않은 혼란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국회법은 의원이 사직하기 위해서는 회기 중에는 본회의 의결로, 비회기 중에는 국회의장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본회의 의결이나 의장의 허가가 없으면 사직이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불공평한 공직 선거법

의원직 사퇴의 선례를 보아도 본회의나 의장이 사직서를 반려한 경우가 적지 않게 있었으며, 또 사직서를 제출했다가 본인이 철회한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선례를 감안하면 지방선거가 끝날 때까지도 원구성이 안될 경우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즉 지방선거에 입후보했다가 낙선한 국회의원이 사직서를 철회하고 의원직을 계속 유지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며, 또 당선되어 단체장과 국회의원을 사실상 겸직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겸직상황은 '후보자등록 신청 전까지 그 직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낙선한 상대후보에 의해 당선무효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 또 다른 복잡한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면 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는가. 이는 공평무사하게 법을 만들어야 할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반영한 법을 만들고, 또 자신들이 만든 법조차 지키지 않는 현실, 그리고 국회운영을 대선전략의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각 당 지도부의 정략적인 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공직선거법 제53조는 공무원 등 일정한 직책에 있는 이가 직책을 이용해 선거과정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선거 60일 전까지 그 직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입후보하는 경우에는 후보자 등록 전까지만 그 직을 그만두면 되는 것으로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같은 공직에 있으면서도 국회의원에 대해서만 사직일을 늦추고 있는 것은 후보공천을 받지 못한 경우에도 의원직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의원직을 갖고 있는 것이 의정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선거기간 이전에도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유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항은 자치단체의 장이 그 자치단체의 관할구역과 같거나 겹치는 지역구의 국회의원선거에 입후보하고자 할 때는 선거 1백80일전까지 그 직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규정과는 크게 대조가 되는데, 이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국회의원직을 넘보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공직선거법 제53조는 국회의원의 사직은 늦추고 경쟁 가능성이 큰 단체장의 사직은 앞당겨 놓음으로써 국회의원 자신들의 이익만을 보호하고 있는 독소조항이라고 할 수 있다.

공직선거법 자체가 이렇게 불공평하게 돼있다고 할지라도 원 구성이 늦어지지 않았다면 이러한 혼란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쟁 때문에 원 구성이 늦어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국회법은 후반기의 원 구성은 전반기 의장단의 임기가 만료되기 5일 전에 완료하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이 조항마저도 지키지 않고 있어 혼란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院구성 늦어 혼란 올 수도

따라서 각 정당들은 더 이상 현란한 정치개혁의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있는 국회법이라도 잘 지켜야 할 것이다. 전자투표·전원위원회·공청회개최 그리고 축조심사 등에 관한 국회법 규정이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국민은 잘 알고 있다. 특히 국회를 장악해야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는 계산 아래 각 정당들은 필사적인 샅바싸움을 하고 있는데, 이는 유권자들의 선택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잘못된 정치적 계산이다.

깅그리치가 이끄는 미국의 공화당 의회가 클린턴에 대한 탄핵조사를 벌이는 등 강공 일변도로 나아가자 오히려 미국민들 사이에서 대통령에 대한 동정여론이 일었고, 한걸음 더 나아가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클린턴이 필요하다고 느껴 압도적으로 클린턴을 재선시켰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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