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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혼혈 남매, 우울한 성탄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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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 지난달 3일 부모에게 버림받고 서울의 아동복지센터에 맡겨진 동남아계 혼혈아인 데니(左)와 행아.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오후 서울 수서아동복지센터.

결손가정 자녀 등 20여명의 버림받은 어린이들 가운데 동남아계 혼혈아 남매인 데니(3.여)와 행아(2)가 동그란 눈을 창문 건너로 연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자신들을 버린 엄마가 찾아올까 싶어서다. 이러길 벌써 51일째.

남매는 지난달 3일 서울시 반포동의 한 쇼핑센터 주변에 세워진 쓰레기 컨테이너 사이에 버려졌다. 둘을 발견한 서초경찰서 박윤미 경장은 "컨테이너 주변에 대소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미뤄 오랜 시간 엄마를 기다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데니와 행아는 밥과 김치를 잘 먹고 한국 생활에 익숙한 점으로 미뤄 동남아 국가 출신의 아버지가 국내로 일하러 왔다가 한국 여성과 만나 낳은 혼혈아로 추정될 뿐이다. 그러나 까무잡잡한 피부와 곱슬머리만 빼면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영락없는 한국 아이다. 곧잘 우리 말을 하는 누나와 달리 말이 서투른 동생은 '행아'라는 별명을 이름으로 삼았다.

남매 간의 우애는 남다르다고 한다. 동생 행아가 화장실에 다녀오면 데니가 항상 옷매무새를 만져준다. 데니가 없어지면 울며불며 누나를 찾는 행아를 달래느라 복지센터의 사회복지사들은 한참동안 애먹어야 한다.

이들이 앞으로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2개월 정도. 미아들은 임시 보육시설에서 3개월만 보호한다는 규정에 따라 내년 2월이면 장기 보육시설로 옮겨져 고아의 슬픈 운명을 걸어야 한다. 혼혈이라는 딱지 때문에 입양이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 입양은 입양을 원하는 부모들 대부분이 비밀 입양을 요구하고, 생김새와 혈액형을 따지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남매를 해외로 보내려 해도 정부가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입양을 제한하는데다, 부모 신원이 확인되고 호적에 등록돼야 한다는 법절차로 사실상 길이 막혀 있다.

임준경 사회복지사는 "나이가 어려 자신들이 버려진 줄도 모르고 생활하고 있지만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풀이 죽는다"며 "평생 고아의 설움과 혼혈의 차별을 안고 가야 할 어린 남매가 너무 안쓰럽다"고 말했다. 소박한 트리에 불이 켜지고 캐럴송이 나왔다. 오누이는 잠시 흥에 겨운 듯 다른 어린이들과 어울려 춤을 췄다. 무심코 엄마 이야기를 물었다. 데니는 "몰라,몰라"하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는 듯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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