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공원서 일어난 이상한 사건 … 쿨한 해결사 동네개들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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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롱 도그 바이
가스미 류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새앙뿔, 368쪽, 1만원

하드보일드의 거장 레이몬드 챈들러의 대표작 『기나긴 이별』(Long Good Bye)을 패러디한 ‘개 추리’이다.

추리소설이 유머러스하기는 쉽지 않다. 범죄를 전제로 한 것이니 당연하다. 물론 『아기는 프로페셔녈』(레니 에어드 지음, 동서문화사)처럼 유머소설 뺨치는 것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 개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소설은 적지 않다. 그렇지만 주인공 개의 시각으로 쓰인 것은 손꼽을 정도고, 그나마 아동물이 대부분이다.

이 책은 개가 주인공인 추리소설이다. 주인공 ‘애로우’는 일본 토종견인 시바이누와 종류를 알 수 없는 서양개의 잡종이다. 등에 화살 무늬가 있어서 붙은 이름도 그렇고, 터프하고 냉소적이며 쿨한 성격도 챈들러의 탐정 필립 말로우를 연상케 한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는 것에 쾌감을 얻는 모양이다…아마 자신의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리라. 그만큼 사람은 뒤가 구린 존재란 말인가.” 애로우가 툭툭 던지는 이런 말들이 그렇다.

11월 어느날 아침 도쿄의 프라다 공원으로 ‘멍책’(개와 주인의 산책을 개들은 이렇게 부른단다)을 갔던 애로우는 명견 레노의 동상 받침대 옆에 우엉이 심어져 있는 기이한 광경을 접한다. 집으로 돌아온 애로우는 누가 왜 우엉을 거기다 심었는지 알아봐 달라는 사건의뢰를 받는다. 의뢰자는 당연히 개. 접골사를 주인으로 둔 ‘본타’다. 사이렌 소리로 패닉 상태에 빠져 주인댁 우엉을 파내 간 범인을 잡지 못한 본타가 오명을 씻고 싶어 부탁한 것이다. 애로우는 동네 개들의 협조를 얻어 탐정놀이에 나서는데 이들 ‘G8’이 걸작이다. 자물쇠 따기의 달인인 불독 듀크, 쿵푸 못지 않은 ‘멍푸’의 달인 차우차우 신티, 변장의 달인인 치와와 폴리, 장비제조 전문가 비글 스누퍼 등 가히 특공대 수준이다. 애로우와 G8은 유령견, 견(犬)밀실, 천국에서 내려운 레드카펫 등 수수께끼를 풀어가며 범인을 찾아가는데….

애로우가 말하는 견법(犬法)이 기억에 남는다. ‘함부로 꼬리를 흔들지 말 것’ ‘앉아를 할 때는 가슴을 펼 것’ 등 말이다. 또 있다. 사건을 해결한 애로우가 마지막에 하는 말. “동료들의 수만큼 길이 생긴다. 그리고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어쨌거나 개가 ‘수사’를 하는 만큼 추리는 약하다. 대신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종류의 개들의 특성을 잘 살려 유쾌하다. 챈들러 팬들과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법하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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