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BOOK] 인생을 돌아보고 아시아를 내다보다, 노학자 스칼라피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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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스칼라피노 교수의 신(新)동방견문록
 로버트 A 스칼라피
노 지음, 최규선 옮김
중앙북스, 370쪽, 1만8000원

1959년 미 상원에 제출한 ‘콘론 보고서’에서 남한에 군사구데타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한 인물, 1980년대에는 한국의 군사정권에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권고했고, 1990년대에는 한국 정부에 러시아·중국을 향한 북방정책을 조언한 인물. 로버트 스칼라피노 미 UC버클리대 명예교수의 이야기다.

신간 『신(新)동방견문록』은 그의 회고록이다. 20세기 중후반 아시아의 정치적 격변기를 미국 정치학자의 삶을 통해 되돌아보는 색다른 즐거움을 이 책은 선사한다.

한국에서 그는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의 저자로 유명하다. 책 제목만 보고 그를 공산주의자로 단정해선 안된다. 그는 민주주의의 진보를 기원했지만 공산주의에는 반대했음을 이번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 그가 한반도 전문가인 것만도 아니다. 아시아 전문가라고 해야 옳다. 그의 연구 경로는 일본학에서 시작, 중국학을 거쳐 한국학으로 이어졌다. 『현대 일본 정당과 정치』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 등의 저술로도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몽골·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인도 등으로 관심이 확장됐다.

저자는 아시아에 대한 자신의 폭넓은 발걸음을 잔잔히 되돌아봤다. “2차대전 발발 이후부터 아시아는 내 인생이었다”고 고백한다. 성장과정과 대학시절 등 개인사도 배치했지만 단지 옛날 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아시아의 미래를 점친 대목이 주목할만하다.

“만약 단기간에 북한 정권이 붕괴되고 남한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게 된다면 한반도의 통일비용이 동독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엄청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남한 지도부는 흡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통일은 당분간 불가능해 보인다. 통일이 이뤄지려면 반드시 북한 내 대대적인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또 다음과 같은 조언도 귀담아들을만하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20∼30년 후 중국은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다… 한국은 모든 주변국과 균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과 전략적 특수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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