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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적 인식’과 천안함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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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외교정책을 다루는 이론 중에 선별적 인식(selective perception)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 용어는 정책 결정자의 믿음 체계를 강조하는 이론에 등장한다. 그 의미는 정책 결정자에게 전달되는 정보가 말 그대로 선별적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쉽게 풀이하면 정책 결정자는 스스로 믿고 싶은 정보만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무시한다는 말이다.

선별적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스탈린이다. 스탈린은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 침공을 감행했는데도 한동안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 아마도 1939년 9월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독-소 불가침조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에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부 유럽에 위치한 독일이 서쪽과 동쪽에 동시에 전선을 열어 양면 전쟁을 감행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소련군 사령부는 오히려 전방부대의 임무 소홀을 문제 삼으며 엉터리 정보는 암호문으로 보내지 말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스탈린이 어느 시점에 독일의 침공 사실을 인정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독일의 공격에 너무 놀란 스탈린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소련의 국정을 제쳐두고 한동안 고립되어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선별적 인식은 한국전쟁에서도 목격되었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맥아더 장군은 서울을 수복한 뒤에 38선을 넘어 북진을 감행했다.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국제연합군이 북쪽으로 빠르게 진격해 오자 이를 가장 우려한 국가는 중국이었다. 맥아더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한국전에 개입할 것이라는 첩보를 계속해서 보고받고 있었다. 하지만 무시했다. 맥아더는 수년간의 내전으로 피폐화된 중국을 1949년부터 이끌게 된 마오쩌둥이 무리하게 한국전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이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선별적 인식은 천안함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대응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 5월 민·군 합동조사단이 밝힌 천안함 사건의 원인에 대한 논란이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는 선별적 인식이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소에 북한이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고 믿어온 사람은 합동조사단이 내린 결론을 받아들이는 데 큰 문제가 없다. 반대로 북한이 우리를 무력으로 도발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믿어온 사람은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북한군에 있다는 정보를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특정 믿음체계를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가 보는 현실이 개개인이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체계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천안함 사건을 바라보았으면 한다.

이유신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