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여파 人權 큰 상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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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9·11 테러에 따른 대(對)테러 전쟁으로 전세계에서 인권탄압이 방치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은 28일 발표한 '2002년 연례보고서'에서 "9·11 파장이 인권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미국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앰네스티 미국 지부의 빌 슐츠 사무총장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 싸우는 데는 불독이지만 동맹국들의 인권침해에 대해선 애완견"이라고 힐난했다.

◇추락하는 미국의 인권 수준=슐츠 총장은 "부시 정부가 대테러 전쟁 수행을 구실로 국민의 인권을 침해했고 이 때문에 다른 나라의 인권탄압 비판에 소극적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관타나모 기지에 수용돼 있는 아프가니스탄 포로들에게 제네바 협약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다른 나라들을 비판할 자격이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AI가 공개한 보고서는 "9·11 테러 이후 1천2백명의 외국인들이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조사받고 있으며 테러 혐의를 받는 외국인은 자국민과 달리 군사법정에 회부하는 특별 조치를 취했다"면서 "이는 차별금지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국제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슐츠 총장은 "체첸 반군 포로를 고문·처형하는 러시아에 '제네바 협약을 준수하라'고 미국은 촉구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부시 대통령은 2000년 대선 때 러시아를 맹비난했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선 이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이밖에 "미국 경찰의 가혹행위와 불법 총격이 심하며 교도소 내 학대도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유럽도 9·11에 편승=앰네스티 보고서는 "유럽국가들도 9·11 테러를 계기로 안보강화 조치를 하면서 인권을 침해하고 표현의 자유·집회의 자유와 공정한 비판을 받을 권리와 망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영국은 2001년 12월 '반테러·범죄 안전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테러 혐의를 받거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혐의를 받는 외국인을 재판없이 무제한 구금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제시되는 증거는 '비밀증거'면 족하다. 정부가 '멋대로'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영국은 유럽국 가운데 유일하게 18세 이하의 군인을 아프가니스탄에 파견, 청소년의 인권도 침해하는 것으로 지적됐다. 보고서는 또 "소수민족과 외국인에 대한 국가기관의 고문, 부당 취급이 유럽에 여전히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 국가로는 오스트리아·벨기에·핀란드·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 등이 거론됐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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