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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진 대선 반란표 … 메르켈의 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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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크리스티안 불프 대통령 당선자(오른쪽)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베를린 의사당에 나란히 앉아 있다. [베를린 AP=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리더십에 큰 상처가 났다. 그가 내세운 대통령 후보에 대한 간접선거에서 지지 세력 내의 ‘반란’이 표출된 것이다. 지난달 30일 치러진 대선에서 집권 중도우파 연정 측의 크리스티안 불프(51) 후보가 당선했으나 3차 투표까지 가는 수모를 겪었다. 독일에선 연방 하원의원(622명)과 16개 주의회 대표(622명)로 구성되는 1244명의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한다.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기민당(CDU)·기사당(CSU)·자민당(FDP) 측 연방총회 선거인단은 과반(623명)보다 21명이 많은 644명이다. 따라서 이들이 당론에 따른 투표를 했다면 1차 투표에서 불프 후보의 과반 득표로 결론이 났어야 했다.

하지만 1차 투표에서 불프 후보는 600표 밖에 얻지 못했다. 연정 측 선거인단 중 최소한 44명이 불프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은 것이다. 과반 득표자가 없어 실시된 2차 투표에서도 불프는 615표를 얻는 데 그쳤다. 야당인 사민당(SPD)과 녹색당 측이 내세운 요아힘 가우크(70) 후보는 1, 2차 투표에서 각각 499, 490표를 얻었다.

단순 다수 득표로 당선인을 결정하는 3차 투표에서 집권 세력은 역전패의 위기까지 맞았다. 1, 2차 투표에서 126, 123표를 얻은 좌파당의 후보가 사퇴해 이 표가 가우크 후보에게 몰릴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3차 투표를 앞두고 “우리의 월드컵 축구팀이 조별예선에서 세르비아에 졌지만 16강에 진출해서는 잉글랜드를 대파했다”며 “이제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결국 좌파당 선거인단이 가우크 후보가 보수적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기권하고 집권 연정 측의 이탈표도 줄어 불프 후보는 623표를 얻어 당선했다.

독일의 일간지 디 차이트는 “메르켈 총리의 굴욕”이라고 선거 과정을 평가했다. 독일 언론은 반란표의 대부분이 자민당 측 선거인단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 출범한 메르켈 연정이 내분으로 와해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선거는 5월에 호르스트 쾰러 전 대통령이 “국가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는 군사작전도 필요하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사퇴한 데 따른 것이다. 내각제 국가인 독일의 대통령은 상징적 국가원수의 지위를 갖는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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