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개발史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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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남 개발을 오랫동안 다뤄온 서울시 김학재 행정2부시장은 "따지고 보면 오늘의 강남을 만든 것은 바로 북한"이라고 지적했다. 1975년 당시 서울 인구의 90%가 강북에 몰려 살아 도심 인구 집중을 막고 북한 침공시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강남 개발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순탄하지 않았다. 서울시사(史)는 "아무도 허허벌판에 가려고 하지 않아 맨 먼저 공무원들부터 반강제로 이주시켰다"고 적고 있다.하지만 공무원 아파트에 입주한 이들도 교통 불편과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다시 강북으로 건너오기 일쑤였다.

60~70년대 영동 토지구획정리사업과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강남 개발의 기폭제였다.

70년 주택공사가 서초구 반포동에 3천여가구 규모로 대단지 아파트를 선보였고, 75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분양되면서 강남의 아파트는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강남 개발이 시작된 뒤 불과 5년 만에 민간 차원의 강남 붐에 시동이 걸린 것이다.

80년대엔 법원·검찰청사가 서초구로 옮겨오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대회를 거치면서 강남·송파는 쾌적한 공원과 현대식 주거환경을 갖춘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90년대 후반 벤처 붐 때는 삼성동 테헤란로 일대가 벤처기업들에 성공을 키우는 '약속의 땅'으로 등장했다. 경기고·서울고·경기여고·숙명여고 등 강북의 명문고들이 강남으로 입성하면서 '8학군 병(病)'이 생겼고, 최근에는 각종 입시학원이 밀집한 '대치동 증후군'까지 나타났다. 불과 30년 만에 강북 역차별이 선거 이슈로 등장한 것이다.

박현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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