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으로 애정결핍 해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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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훌리건(hooligan)은 축구경기의 승패와 관계없이 난동과 파괴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향락'을 추구하는 경기장의 난동꾼이다. 실제로 폭력을 통한 훌리건의 자기만족적인 쾌락 추구는 유혈참사는 물론 테러와 전쟁으로까지 이어지곤 했다.

1964년 페루와 아르헨티나의 경기 때 3백여명이 사망하고 5백여명이 부상한 사건, 69년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의 축구전쟁, 그리고 훌리건의 폭력성이 본격적으로 사회문제가 된 85년 잉글랜드 리버풀과 이탈리아 유벤투스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영국 훌리건의 난동으로 스탠드가 붕괴해 40여명이 사망한 사건 등 대형 참사가 속출했다. 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자책골로 경기를 망친 콜롬비아의 수비수가 술집에서 피살되는 테러가 발생했으며,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독일 훌리건의 난동으로 인해 독일 대표팀이 모든 경기를 포기하려 했던 일도 있었다.

그러면 훌리건은 왜 등장하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 요즈음 각종 국제경기에 나타나는 훌리건은 일단 전쟁 또는 혁명과 같은 급격한 사회변동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임이 분명하다.또한 그들은 대내외적인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무너진, 비교적 안정적인 시기에 부모에게 의존해 '풍요'의 환상 속에서 부유하게 성장했다는 사회심리학적 특징도 지니고 있다.

이를 두고 정신분석학자 피어슨은 젊은 훌리건 대부분이 중산층 이상의 부모 밑에서 정신적 '유기(遺棄)'에 의해 성격이 발달한 유형이라고 한다. 그들은 성장과정에서 풍요롭게 자라기는 했지만 늘 부모의 애정을 갈망하며 스스로를 외롭다고 정신적으로 가해하고, 이를 보상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가학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으며, 그럴 때에만 무엇인가를 성취했다는 안정감(부모로부터의 인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훌리건은 정신적 유기를 사회적 차원으로 전치(轉置)해 축구뿐 아니라 '타자(他者)'를 공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공격(경기장 기물 파괴·방화·소동·선수 구타 등)은 축구가 상징화한 사회질서에 대한 '무력한' 저항에 불과한 것이다.

<주요 축구 사건 일지>

▶1964년:페루 리마에서 벌어진 올림픽 예선 아르헨티니와 페루전에서 폭동 발생. 3백18명 사망,5백여명 부상

▶82년:유럽축구연맹컵 러시아 스파르타그와 네덜란드 할렘 간 결승전에서 3백여명 사망

▶85년:벨기에에서 벌어진 잉글랜드 리버풀과 이탈리아 유벤투스의 유럽축구연맹컵 결승전에서 39명 사망,4백54명 부상

▶89년:영국 힐스보로에서 열린 노팅엄 포리스트와 리버풀전에서 95명 압사,1백70여명 부상

▶96년:남미 과테말라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 과테말라와 코스타리카전에서 82명 사망

▶2000년:유럽축구연맹컵에서 터키의 갈라타사리와 잉글랜드의 리즈 유나이티드전을 앞두고 양국의 훌리건이 충돌.2명 사망, 10여명 부상

▶2000년:짐바브웨 하라레에서 열린 2002년 월드컵 아프리카 최종예선 남아공과 짐바브웨전에서 12명 사망

▶2001년: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경기 도중 흥분한 관중들의 난투극을 진압하는 도중 경찰의 최루탄을 피하려던 관중 1백여명 압사,1백50여명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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