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60년] 판문점의 공산주의자들 (121) 김일성의 됨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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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 노동당이 2008년 펴낸 책이다. 이 책자에는 전쟁 중에 남일이 적은 일기가 몇 대목 있다. 우리 쪽에서 보면 늘 굳은 표정으로 담배를 연거푸 입에 물던 남일이었다.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일은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울러 저들이 어떤 생각으로 회담장에서 이런저런 행동을 했을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도 이 자료가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점에서 최근 입수한 자료에 실린 남일의 일기를 부분적으로 옮기겠다.

남일은 전선에서 전투를 지휘하다 어느 날 김일성의 부름을 받았다. 그가 1951년 6월 30일자로 적은 일기의 한 대목이다.

“늦은 저녁 무렵 나를 만난 김일성(책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으로 호칭했음)은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결정을 알려주기 위해서 전선에 있는 나를 불렀다며 적들이 정전 담판을 제안했다는 것을 말해줬다.”

김일성은 당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의 발언에서 “미국은 휴전회담을 통해 떨어진 위신을 회복하고 동맹국들 사이의 여러 가지 갈등을 줄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휴전회담을 통해 자신이 ‘세계 평화의 수호자’라는 인상을 심어 세계 각국을 속이려 했다는 지적도 덧붙이고 있다.

남일은 그 일기에 “김일성이 조선에서 침략전쟁의 불을 지른 미제가 흰 기를 들고 우리 공화국에 정전 담판을 제기하여 온 만큼 우리가 그것을 반대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고 적고 있다. 처음부터 아군 측의 휴전 회담을 미군이 항복해 온 것처럼 표현한 점이 눈에 띈다.

사실 북한은 이미 막바지에 몰려 있던 상황이었다. 중공군 참전으로 겨우 38선 근처에서 전선을 형성했지만, 나중의 여러 기록에서 나타났듯이 그들은 이미 휴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만큼 지쳐 있었다. 그럼에도 휴전회담 제의를 ‘미국의 항복’으로 선전하고 있는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실제 휴전회담을 먼저 꺼낸 나라가 미국이 아닌 소련이라는 점은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다.

나는 이 대목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그 다음에 무엇을 한 것일까. 남일은 김일성 이 회담장을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선전장으로 활용할까에 골몰한 상황을 전하고 있다. 그 대목을 다시 옮겨 본다.

휴전회담에서의 공산군은 아군 회담대표에게 미군으로부터 뺏은 지프를 배정하면서 자신들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나타났다. 심리전의 일환이었다. 북측 수석대표인 남일이 전쟁 중에 노획한 존 무초 주한 미국대사의 승용차를 타고 회담장에 내리고 있다. 차량은 1940년대 후반에 생산된 크라이슬러 임페리얼로 추정된다. [중앙포토]

“김일성이 (우리에게) 오늘부터 정전 담판장에 구라이드라 승용차를 타고 다녀야 하겠다고 말했다. 김일성은 이어 ‘정전담판 우리 측 수석대표인 동무에게 승용차가 없어서 이 차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동무가 이 차를 타고 가면 흰 기를 들고 정전담판에 나온 적측 수석대표와 수행원들이 패배자로서의 수치감을 느끼며 머리를 들지 못할 것입니다. 반대로 동무들은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제 무력침범자들의 거만한 콧대를 꺾어버린 승리자라는 자부심을 안고 존엄 있고 정정당당하게 정전 담판장에 나설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그제야 김일성의 의도를 깨닫고 나는 ‘알았습니다’라고 힘차게 대답을 드렸다.”

‘구라이드라’는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전차부대원이 노획한 고급 승용차로, 존 무초 당시 주한 미국대사의 전용차였다. 미국산 크라이슬러를 일본어 식으로 발음한 ‘구라이스라’를 저들은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몸집이 지프보다 훨씬 큰 세단형이다. 나도 회담장인 내봉장에서 그들이 타고 들어오는 ‘구라이드라’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미군으로부터 노획한 지프에 흰색 깃발을 달고 끌고 나와 우리 측 대표들을 태운 뒤 회담장인 내봉장까지 옮겼다. 대신 자신들은 지프보다 외형이 좋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나오면서 기세를 부리려 했던 것이다. 어쨌든 저들의 저의(底意)는 이 대목에서 충분히 드러나 있다.

미국과 유엔이 항복했다는 거짓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우리가 탄 지프에 일부러 흰색 깃발을 단 것이다. 게다가 자신들이 타는 고급 차량에는 흰색 깃발을 매달지 않음으로써 우리 측이 마치 투항해 초라한 모습으로 회담장에 도착했다는 점을 연출하려 한 것이다. 그 깃발은 우리 대표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아 며칠 뒤에는 달지 못했다.

남일의 내면도 드러나 있다. 그는 ‘구라이드라’를 타고 간 날 조이 제독이 당황할 것이라고 미리 짐작한 모양이었다. 남일의 일기는 “오늘처럼 통쾌한 날이 평생 있을 것 같지 않다. 적측 수석대표 조이가 내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을 그려보니 절로 가슴이 흐뭇해졌다”고 적었다.

회담장에 나서면서 김일성에게 받은 상아(象牙) 담배 파이프와 가죽 장화에 대한 자랑도 대단하다. 감격에 겨운 듯 김일성이 회담에 나서는 자신에게 귀한 상아 담배 파이프와 가죽 장화를 내려준 고마움을 적고 있다. 나는 남일의 일기를 보면서 솔직히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런 정도의 머리를 쓰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일으켜 한반도 전역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는 점이 그랬다.

승용차 크기로 상대를 누르려 하고, 백기(白旗)를 상대에게만 꽂게 한다는 식의 자디잔 속임수의 주인공이 김일성 본인이라는 점에서는 더 어이가 없어진다. 그런 길거리 불량배 정도의 국량(局量)을 지닌 김일성에 의해 민족이 서로 죽고 죽이면서 끝내는 국토를 반으로 갈라야 하는 운명을 맞아야 했다는 것이 한숨을 내쉬게 하는 대목이다.

백선엽 장군
정리=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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