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좇아 달리던 강남 사람들 통해 한국 자본주의 단면 파헤치려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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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황석영씨가 30일 서울 신문로의 한 음식점에서 장편소설 『강남몽』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꼭 15년 전 6월 29일, 한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서울 강남의 삼풍백화점이 단 10초 만에 무너졌다. 1500여 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소설가 황석영(67)씨는 당시 국가보안법으로 7년 형을 선고받고 충남 공주교도소에 있었다. 그는 감옥에서 신문으로 이 사건을 접했고, 욕망을 좇아 달리던 인간들을 참사 속에서 읽었다.

지난해 9월부터 8개월 동안 인터넷서점(인터파크도서)에 연재한 소설 『강남몽(夢)』은 작가가 “필생의 작업 중 하나”라고 밝혔던 강남 형성의 역사를 다뤘다. 국밥집 딸에서 ‘강남 사모님’으로 신분이 바뀐 여성을 중심으로 재벌과 조직폭력배, 부동산업자와 가난한 백화점 종업원이 얽히고설킨다.

30일 『강남몽』출간 기자간담회에서 황씨는 “현재 우리 욕망·좌절·문제점의 뿌리를 시간의 상처 속에서 찾을 수 있다. 한번 되돌아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백화점 붕괴 사건 발생 뒤 20일 동안의 신문을 샅샅이 뒤졌다. 연재 전 4~5년 동안 미국까지 가서 한국 자본주의 형성사를 더듬었다. 소설은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색하고 썼으면 열 권은 나왔을 만큼 심각한 이야기다. 그래서 집필을 뒤로 미루고 수 년 동안 내버려두고 있었습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단면을 파헤치고자 했던 작가는 희한하게도 동남아의 섬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인도네시아 발리에 여행을 갔다가 현지인들이 힌두교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풀어놓은 것을 봤다. 거대하고 음산한 인도의 힌두교 대신 오종종한 신전과 색색의 꽃들이 재미있었다. 거대한 이야기도 날렵하고 아름답게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황씨는 발리에서 한국의 꼭두각시 놀음을 떠올렸다. 등장인물들이 마당에 나와 놀며 억눌린 감정을 푸는 꼭두각시 놀음처럼, 한국 자본주의사라는 묵직한 얘기를 다양한 캐릭터를 동원하며 경쾌하게 그려냈다. 인터넷 연재인 만큼 더욱 짧고 강한 문장을 썼다.

황씨는 “이 소설의 80%는 사실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백화점·실존인물 이름은 교묘하게 바꿔 사실과 허구를 겹쳐놨다. 박정희·김구·여운형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은 실명으로 등장한다.

소설가 김훈씨는 “『강남몽』이 보여주는 시대 전체의 풍경은 거대한 가건물과도 같은데, 그 무너진 가건물의 잔해 밑에 지금 사람들이 깔려있다”라고 소개 글을 썼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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