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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탄생 도운 건 내 소명" 독립선포식서 감격의 눈물 흘린 손봉숙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21세기 최초의 독립국가로 탄생한 동티모르의 건국사업에 큰 공헌을 한 한국 여성으로 기록될 손봉숙(孫鳳淑·58)중앙선거관리위원. 그는 19일 밤부터 20일 새벽 사이 동티모르 독립선포식이 진행되는 동안 귀빈석에서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孫위원은 동티모르의 역사를 바꿔놓은 1999년의 독립 찬반투표 때 국제선거관리위원으로 활동했고 지난해엔 제헌의회 선거의 전 과정을 총괄한 선거관리위원장으로 동티모르 독립에 기여해 왔다.

"두차례에 걸쳐 6개월 동안 동티모르 전역의 밀림을 누볐어요. 공정한 투표와 개표, 발표까지의 전과정을 직접 지켜보고 관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은 적도 있었다. 99년 9월 4일 기자회견을 통해 독립 찬반투표 개표결과를 발표한 뒤 차를 타고 나오는데 느닷없이 복면을 한 괴한들이 나타나 총격을 퍼부었다. 독립에 반대하는 친(親)인도네시아계 민병대들의 소행이었다.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피의 폭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 피난민 수백명이 유엔 건물 강당으로 피신해 왔어요. 모두 떨고 있었죠. 그런데 한 소녀가 아베마리아를 선창하자 피난민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따라 부르는 것이었어요. 이때 이 나라를 세우는 일에 미력이나마 보태는 것이 내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孫위원은 선거관리 활동을 통해 동티모르의 많은 지도자들과 교분을 쌓았다. 선거감시 활동차 지방으로 갔을 때 밀림에서 만난 게릴라 지도자였던 마탄 루악은 지난해 동티모르 국군인 방위군의 초대 사령관이 됐다.

"동티모르의 장래는 밝다고 봅니다. 5백년 가까운 세월 동안 외세의 수탈만 받고 살았는데 이제 그 수탈이 사라졌으니 지금까지보다는 더 잘 살게 될 것은 틀림없는 일이죠."

딜리(동티모르)=예영준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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