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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韓 불변론은 허구… 변화 못읽는 美가 문제"-美 북한전문가 셀리그 해리슨의"코리안엔드게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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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그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 김정일 정권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북·미 관계 정상화와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으나 미국이 이러한 일련의 변화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평양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북·미 평화협정이다. 반면 워싱턴은 북한과의 평화협정에는 별 관심이 없고 핵·미사일·테러 같은 개별 문제에만 집착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북한이 핵·미사일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고 전진 배치된 북한군을 후진 배치 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북·미 관계 정상화, 에너지 원조, 주한미군 재배치를 보장받는 패키지딜(포괄협상)뿐이라고 주장한다. 『코리안 엔드게임』의 주요 부분을 소개한다.

◇91년 당 중앙위원회 결정

91년 냉전이 종식되자 모스크바와 베이징(北京)은 평양에의 석유 및 식량 지원 파이프 라인 꼭지를 끊어 버렸다. 연간 44만t에 달했던 소련의 대북 석유 공급량은 4만t으로 줄고 베이징도 대북 식량 공급을 줄였다. 하루 아침에 석유와 식량 공급이 중단되자 북한 내부의 실용주의자들은 경제 붕괴를 피하려면 미국·일본·남한에 손을 벌리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91년 9월 남한 내 전술핵무기 철수를 발표하자 실용주의자들이 더욱 힘을 얻었다.

12월 24일 평양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는 실용주의자들과 강경파 간의 일대 격전장이었다. 북한의 고위 간부와 외교관 전원이 참석한 이 정책 토론은 일체 익명(名)으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강경파들은 미국 제국주의자들과 일본·남조선 호전세력들이 호시탐탐 북한 붕괴를 꾀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했다. 반면 실용주의자들은 그렇다면 "그들을 시험해보자(Let's test them)"고 주장했다. 길고 긴 논쟁 끝에 다음과 같은 절충이 이뤄졌다. 만일 미국이 북·미 관계 정상화라는 북한의 제안을 수용한다면 핵개발의 완전 종료가 아니라 중단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당 중앙위원회의 이같은 결론은 3년 뒤 북·미 제네바 합의를 이루는 토대가 됐다. 당시 실용주의자들을 이끌었던 인물이 바로 김용순 당중앙위 국제담당 비서였다. 92년 1월 김용순은 워싱턴을 방문, 아널드 캔터 당시 국무부 차관을 만났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북한과의 패키지딜은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김용순은 캔터에게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포괄협상을 제안했다. 그러나 캔터는 당시 상부로부터 '정상화(Normalization)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마라'는 훈령을 받은 상태였다. 결국 김용순-캔터 회담은 실패로 끝나고 평양의 실용주의자들은 한발 물러서 때가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백악관 테이블을 내리친 YS

경수로 아이디어를 최초로 제기한 것은 한국군의 김윤호 전 합참의장이었다. 92년 봄 나는 평양에 가는 길에 서울에 들러 金장군을 만났다. 놀랍게도 그는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경수로를 제안하는 것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5월 3일 나는 평양에서 원자력총국장을 만났다. 나는 그에게 북한이 경수로를 원하느냐고 슬쩍 떠봤다. 그러자 그는 반색을 하며 "아주, 아주 흥미가 있다"고 대답했다. 93년 7월 북·미 핵 협상 도중 북한의 강석주 대표는 칼루치 미국 대표에게 경수로를 제공하면 북한은 핵을 동결할 의사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 얘기를 들은 대다수의 미국 관리는 북한의 경수로 제안에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칼루치는 경수로의 중요성을 알아차렸다. 그 길로 칼루치는 워싱턴행 비행기를 탔다.

앤서니 레이크 백악관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을 만난 칼루치는 북한의 경수로 카드를 수용하자고 강력하게 설득했다. 그 결과 회담 발표문에 "북한과 미국은 핵문제의 최종 해결을 위해 경수로 도입을 준비한다"는 구절이 들어갔다.

논리적으로는 이같은 북·미 합의는 양국 간에 긴장완화를 가져와야만 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미국 의회는 물론 남한의 강경파들은 핵과 경수로를 맞바꾸려는 미국의 패키지딜을 대북 유화정책이라고 맹공했다. 11월 16일 당시 국무부 차관보였던 토머스 허버드(현 주한 미국대사)는 김종수 유엔주재 북한대사를 비공식적으로 만나 미국이 패키지딜을 수용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허버드-김종수 면담 정보는 남한의 정보 안테나에 포착돼 한국의 보수진영은 백악관을 겨냥해 포문을 열었다.

93년 11월 23일 백악관에서 열린 김영삼-클린턴 정상회담 분위기는 험악했다. 한·미 양국은 이미 정상회담에 앞서 한승주 외무장관 채널을 통해 일련의 패키지딜에 합의한 상태였다. 그러나 YS는 백악관 테이블을 두드리며 그같은 사전 합의를 순식간에 뒤엎어 버렸다. 또 YS는 북한이 먼저 남한에 특사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클린턴 대통령은 두손을 들고 YS에게 대북 강경책 선회를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카터 방북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을 결심한 배경에는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이 컸다. 조지아대학 총장 출신으로 카터 대통령과 동향(同鄕)인 레이니 대사는 94년 중반 북·미 관계가 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것을 감지했다.레이니는 카터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평양을 방문하라고 요청했다. 당시 유럽 순방 중이었던 클린턴은 카터의 방북을 내심 떨떠름하게 생각했으나 결국 방북에 동의했다. 6월 16일 카터는 평양에서 김일성(金日成)주석을 만나 핵문제에 돌파구를 여는 데 성공했다.

이날 아침 카터는 백악관으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공교롭게도 클린턴은 이때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북한과의 무력 충돌에 대비해 한반도에 대규모 미군 파병을 결정하는 순간이었다.

회의 도중 백악관 보좌관이 달려와 클린턴에게 "카터가 대통령(클린턴)과 통화하고자 한다"고 귀띔했다. 그러자 클린턴은 "카터는 칼루치 대사와 통화하고 싶을 것"이라고 한발 뺐다. 칼루치와 전화가 연결되자 카터는 대뜸 "북한은 핵동결에 합의했다. 우리는 다시 북한과 협상할 수 있게 됐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말했다.

칼루치는 "대통령과 국방장관, 그리고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옆방에서 논의 중입니다. 제가 나설 사안이 아닙니다. 잠시 뒤 다시 전화하시죠"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카터는 "알았다"고 하더니 지나가는 말처럼 "잠시 후에 CNN을 통해 북한의 핵동결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칼루치가 클린턴에게 카터와의 통화 내용을 보고하자 백악관 회의실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대화가 오고 갔다."그러니까 당신은 카터에게 CNN에 출연하지 말라고 말했겠지"(레이크 안보보좌관),"카터는 내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닙니다"(칼루치),"그래도 분명히 얘기했겠지"(레이크),"그래도 지금이 (CNN 출연에)적절한 때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말했겠지"(클린턴).

훗날 칼루치는 이 장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백악관 회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실망감을 표시했다. 나는 두 대통령 사이에서 샌드위치된 상태였다."

◇불확실한 경수로

천신만고 끝에 북·미 제네바 합의가 이뤄졌으나 실제로 경수로가 북한에 제공될지는 불확실하다. 제네바 합의에 따르면 경수로 완공 목표 연도는 2003년이다. 낙관적으로 보면 경수로는 일러야 2008년, 보다 현실적으로 보면 완공 연도는 2015년일지도 모른다. 경수로는 영영 완공되지 않을 수도 있다.

경수로 완공이 비관적인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 경수로를 완공하려면 북한과 ▶경수로 완공 시기▶경수로 비용▶안전협정▶폐연료봉 외부 반출▶손해배상 등의 내용을 담은 의정서를 체결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모두 어려운 문제이다. 둘째, 북한이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지 않으면 경수로를 완공할 수 없다. 54년 제정된 미국의 원자력법에 따르면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수용하지 않으면 미국 기업들은 경수로의 핵심부품을 공급할 수 없다. 셋째, 특별사찰이다. 제네바 합의 제3조 4항에 따르면 북한은 경수로의 핵심부품이 반입되기 전에 IAEA 협정의 '완벽한 준수(Full Compliance)'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칼루치는 이 조문(條文)을 '특별사찰'로 해석한다.

그러나 평양의 해석은 다르다. 내가 지난해 5월 30일 평양에서 백남순 외상을 만났을 때 그는 "미국과 남한·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2003년까지 경수로 2기에 해당하는 전력을 공급하지 않을 경우 핵동결을 풀어버리겠다"고 경고했다.

최원기 기자

서울과 워싱턴의 보수진영들에선, 북한이 지난 50년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북한 불변론(變論)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북한의 당과 군이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 주위에 똘똘 뭉쳐 미국에 접근,주한미군 철수와 대남 적화통일을 꿈꾸고 있다. 따라서 남북문제를 푸는 유일한 방법은 평양의 변화능력에 달려 있다. 그러나 미국의 북한 전문가 셀리그 해리슨은 '북한불변론'이 한갓 '신화'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1990년 초부터 평양을 방문해 온 해리슨은 오늘 미국에서 발간될 자신의 저서 『코리안 엔드게임(Korean Endgame)』을 통해 문제의 본질은 미국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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