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도 한철…" 생각이 스타들 사고로 내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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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인기가수 K양의 하루. 새 앨범을 내고 활동을 개시한 그녀는 그간 휴식기에 수많은 보약을 먹고 잠을 보충하면서 쌓였던 피로와 긴장감을 조금 떨쳐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매니저 말에 의하면 그녀는 아직도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나 다름없다.

컵라면·김밥·프라이드 치킨·햄버거 따위의, 어린이들이 좋아 난리를 치는 패스트 푸드에 이골이 나 위장약을 입에 달고 다닌다. 불철주야 '춤 연습'에 관절 마디마디는 성한 데가 없다. 여자에다 인기인이라 공중 화장실은 꺼려지고, 등 붙이기도 어려운 하루 하루의 스케줄을 소화하려면 화장실 가는 것도 참는 경우가 많아 고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무명 시절 선배 가수 서태지의 차에 간이 화장실이 있었다는 그 '전설'을 왜 그 땐 흘려들었는지 후회스럽다고 한다. 어디 이뿐인가. 잦은 머리 염색과 드라이에 머리카락은 상해 부스러지고, 눈부시도록 뜨거운 조명에 고와야 할 얼굴 피부는 말이 아니다. 쿵쿵거리는 스피커 소리에 한때 심장까지 약해졌고, 이젠 가는귀까지 먹은 듯하다.

게다가 생방송 중 내뿜어 내는 스모그와 화약에 숨을 쉴 때마다 목도 말이 아니다. 한밤중이 다 돼 녹화한 어떤 프로그램에선 목이 너무 아파 그냥 '묵묵이'처럼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됐다.

K양의 하루를 떠올린 건 연예인들의 잇따른 사고 때문이다. 최근 가수 박지윤이 대만 공연 도중 다쳤다. 공연 중 급히 옷을 갈아입다가 넘어져 목을 다친 것인데 이 때문에 예정된 서울 콘서트 일정도 연기됐다. 얼마 전 댄스그룹 '신화'의 전진이 오락 프로그램 녹화 중 머리를 다친 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연예인들이 이처럼 잦은 '사고'를 겪는 것은 무리한 스케줄 운영과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사고 방식 때문이다. 스스로들 그렇게 말한다. 그래서 너무 열심히 자신의 일에만 빠져 '인기'를 위해 조금 더 조금 더 하다가 그만 순간에 사고가 나기도 한다.

때론 대중문화 전반에서 연예인들의 이런 경향에 편승하기도 한다. 연예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갈매기 조너선 리빙스턴도 '높이 날아서 멀리 보라고' 했는데 다람쥐 마냥 스케줄 표에 빠져 버려 두루두루 넓게 보는 것에 대해선 무관심해지고 만다.

신문을 보니 불세출의 테너 파바로티가 독감 때문에 콘서트 시작 몇 분을 앞두고 공연을 취소했단다. 몇 해 전 그가 서울에 왔을 때 그의 전용 샤워장 외경을 본 기억이 새롭다. 전용 냉장고 얘기도 들었다. 하루 사과 몇 개에 생수는 어떤 걸로 승용차는 이런 걸로….그렇게 철저히 관리하던 그도 나이와 독감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미국 소설가 워싱턴 어빙의 '스케치 북'엔 마누라의 잔소리를 피해 산에 나무하러 가서 이상한 복장의 사람들과 나인핀즈(ninepins)놀이를 하고 술에 취해 20년 동안 잠을 잔 '립 밴 윙클'(Rip Van Winkle)의 이야기가 있다. 세상과 세월은 자동차 마일리지 쌓이듯 흐르고 변한다.

그처럼 '모르는 사이에' 립 밴 윙클이 되지 않도록 넓고 멀리 봐야 할 대상이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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