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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찾아 美국경 넘는 멕시코인 그 땅엔 탐욕만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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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47면

좌파 감독으로 분류되는 영국의 켄 로치는 일관성있는 영화인이다. 노동계급·빈민·하층민 등의 문제를 스크린에 지속적으로 투영해온 그의 면모는 2000년 작 '빵과 장미'(사진)에서도 여전하다.

경쟁과 효율을 앞세운 신자유주의 사상이 지구촌을 점령한 요즘 세상에서 그의 외로운 외침이 어느 정도의 공감을 끌어낼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 싫어하는, 아니 애써 외면하는 사회의 모순을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파고드는 그의 지구력만큼은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켄 로치는 '빵과 장미'에서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으로 날아간다. 영화 처음부터 생존을 위해 조국을 탈출해 미국 국경을 넘어가는 멕시코 사람들의 불안정한 삶을 흔들리는 화면 속에 녹여낸다. 국경의 오솔길에서 시작해 로스앤젤레스 고속도로로 점점 넓어지는 길의 이미지를 통해 감독은 더 넓은 세상을 향한 희망과 의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곳은 또 다른 아수라장일 뿐이다. 특히 자본이란 엄청난 무기를 중심으로 네트워크화한 미국 사회에서 멕시코 유민이 설 곳은 거의 없다. 영화는 장난기 심하고 생기 넘치는 멕시코 소녀 마야(파일러 파딜라)가 대형건물의 청소원으로 취직하면서 사회에 눈을 떠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노조 결성조차 금지된 청소원들의 열악한 근로 조건, 그들의 쥐꼬리만한 임금을 갈취하는 청소 대행업체 관리자,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몸을 팔고 노조를 구성하려는 동료 청소원들을 밀고하는 마야의 언니 등 여러 인물의 복합적 관계망을 통해 공룡처럼 무시무시한 현대 사회의 탐욕을 파헤치고 있다.

감독은 이같은 묵직한 사회 비판과 마야와 인권 변호사 샘(애드리언)의 이루지 못할 사랑을 가로·세로로 엮어내며 구호성 선전영화의 틀에서 훌쩍 벗어난다. 제목의 '빵과 장미'는 각각 최소한의 생존 조건과 인간다운 생활을 상징하는 것들.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마치 진리인양 통용되는 요즘 세태를 질타하는 감독의 육성이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럽다.

1960~80년대 성장 드라이브 정책 속에 뜨겁게 노출됐던 한국 사회의 노사 갈등을 되돌아보는 느낌마저 준다. 물론 영화의 '장미'는 아직 우리도 풀지 못한 숙제이긴 하지만…. 켄 로치는 신작 '스위트 식스틴'으로 올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24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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