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진은숙(陳銀淑·41)은 최근 외국 무대에서 가장 눈부시게 활동 중인 한국인 작곡가로 꼽힌다. 유럽 굴지의 교향악단이 앞다퉈 그의 작품을 연주하고 있으며 LA오페라단도 2004~2005년 상연할 오페라'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곡을 위촉해 놓은 상태다.
지난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2002 아시아 현대음악제' 폐막공연은 그의 최근작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가 상주 작곡가로 있는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음악감독 켄트 나가노)가 지난 1월 세계 초연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아시아 초연으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사토 고타로 지휘의 서울시향과 바이올리니스트 비비안 하그너(사진)가 협연한 이 곡은 바이올린이 낼 수 있는 음색을 끝간 데까지 추구한 작품이다. 오르간이나 생황을 연상케 하는 저음 관악기의 화음을 바탕색으로 깔면서 쉴 틈도 없이 독특한 선율을 그려나가는 무궁동(無窮動)의 세계를 펼쳐보였다.
타악기를 남용해 청중을 쉽게 압도하려는 유혹에 빠지지도 않았다. 관현악법의 세련된 절제미가 돋보였다. 하지만 각 악장의 성격이 너무 도식적이었고 관현악을 독주 바이올린의 반주쯤으로 처리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