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지난달 탈북 임신부등 조사중 도주 中,놓아줬나… 놓쳤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달 29일 중국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대사관에 들어가려다 경찰에 붙잡힌 탈북자 김일룡씨(42) 일가족 세명이 감시 소홀을 틈타 도주할 수 있었던 배경이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 당국이 이들의 도주를 묵인했을 가능성 때문이다. 金씨의 부인(40)이 임신 9개월이라는 점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중국이 "이들을 공안시설에 억류하지 않고 여관에 머물도록 하면서 조사를 했다"며 우리측에 도주 사실을 확인해준 데서도 '사실상 석방'의 냄새가 묻어난다.

◇논란 남긴 고육지계(苦肉之計)=중국이 이들의 도주를 묵인했다면 해외 공관 진입에 실패한 탈북자 처리의 첫 케이스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다만 金씨의 경우 일반 탈북자와 다르다. 국군 포로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체포 당시에도 "남한 사람"이라고 주장했고, 우리 정부도 그의 아버지에 관한 자료를 중국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金씨 케이스가 탈북 실패가 공개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확대 적용될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지적들이다.

중국의 태도는 국제 여론과 남북의 입장을 저울질한 고육지계로 보인다. 북·중간 밀약에 따라 이들을 북송하면 국제여론과 한국과의 외교적 마찰이 부담이다. 가뜩이나 미국과 유럽이 파룬궁 문제를 비롯한 중국의 인권상황을 곱게 보지 않고 있는 마당에 만삭의 임신부를 북송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렇다고 한국행을 보장하면 탈북자의 공관 진입 도미노 현상이 걱정거리고 북한과의 관계도 문제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의 태도에는 무척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묵인'은 또다른 논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우리측의 인도주의적 처리 요구를 묵살한 것이기 때문이다.

◇길수군 친척한테도 적용되나=중국이 선양(瀋審)주재 일본영사관 진입에 실패한 장길수군 친척 다섯명의 신병처리에 金씨 케이스를 원용할지는 미지수다. 金씨 케이스와 달리 이번에는 일본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일 양국은 외교마찰을 빚고 있다. 일본은 인권 문제에 등을 돌린다는 국제 비난여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들 다섯명의 제3국 추방 또는 한국행을 위해 외교력을 모을 전망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들을 일본측에 인도하지는 않을 것이 확실시된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다섯명 모두의 신병 인도를 중국에 요구하고 나서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오영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