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소니 검거왕' 영등포서 이수일 경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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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일 경사가 교통사고 현장에서 수거한 전조등 조각을 수리 중인 차량과 대조하고 있다.[김성룡 기자]

"빨리 병원으로 옮기면 살 수 있는 피해자를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것은 살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21일 한국교통장애인협회가 주는 '제7회 교통정의상'을 받은 서울 영등포경찰서 뺑소니사고전담반 이수일(46)경사. 교통사고 조사만 13년째인 그는 사고 현장에 떨어진 전조등이나 범퍼 조각 몇개를 단서로 범인을 족집게처럼 찾아내는 '뺑소니 검거왕'이다.

뺑소니사건 수사는 퍼즐을 맞추는 것만큼이나 난해한 일이지만 그에게 맡겨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1993년 3월 초 심야. 서울 양천구 목3동 도로변에 승용차 백미러 조각과 50대 남성의 시신만 남기고 사고 차량은 흔적없이 사라졌다. 이 경사는 백미러를 들고 영등포 일대의 자동차 부품상을 돌아 백미러의 제조날짜를 알아낸 뒤 판매 경로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자동차가 무허가 중개상을 통해 여러차례 팔린 것을 확인했다.

이 경사는 사고 당시 소유자의 이름을 알아낸 뒤 전국에 있는 동명이인 22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탐문수사했다. 그는 사건 발생 6개월 만에 추석 때 고향을 찾은 운전자 조모(37)씨를 검거했다. 이 경사는 "피해자 유족이 눈물을 흘리며 '한을 풀어줘 고맙다'고 하더군요. 그 동안의 피로가 눈녹듯 풀렸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경사는 지난해 8월 양평동 서부간선도로에서 발생한 충돌사고 뺑소니범을 잡기 위해 전국을 뒤졌다. 가해 차량은 등록되지 않은 이른바 '대포 차량'이었다. 강원도 정선에서 전북 정읍까지 12명의 중간매매자를 찾아다녔다.

사고운전자 이씨(34)를 찾아낸 것은 2개월반이 지난 뒤였다. 동료들은 다시 한번 그의 집요함에 혀를 내둘렀다. 힘든 점도 많다. 사고가 주로 심야에 발생하기 때문에 하얗게 밤을 새우는 날이 부지기수다. 강력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 못지않게 열심히 일하지만 별로 알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뺑소니범을 빨리 잡지 않는다고 독촉하는 피해자들의 성화에 시달린다.

"범인을 잡아 피해자가 보상을 받게 되면 꼭 내 일처럼 기뻐요." 이 경사가 10년 넘게 교통사고 조사에 몸담고 있는 이유다.

그의 끈기는 실적으로 나타난다. 영등포경찰서는 지난해 서울지방경찰청 산하 31개 경찰서 중 뺑소니사고 검거율 1위(94%)를 기록했고 올해도 40건의 뺑소니사건 중 39건을 해결했다. 이 경사는 "뺑소니사건을 당한 뒤 도망치는 가해자를 쫓아가다 제2의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다"며 "침착하게 차량번호를 적어두면 경찰이 반드시 잡아준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임미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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