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냐 복지 확대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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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호 02면

보금자리 주택의 가장 큰 문제는 이 정책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보금자리를 계속 공급하려면 그린벨트를 계속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린벨트가 무한정 있는 건 아니니, 결국 지속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미래의 무주택 서민은 어떻게 할 요량인가. 지금의 무주택 서민만 한탕 벌게 해주겠다는 정책이란 느낌이 든다. 이 칼럼에서 줄곧 보금자리는 분양이 아니라 전부 임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이유다. <5월 2일자, 지난해 8월 23일자>

김영욱의 경제세상

6·2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재미 봤다는 보편적 복지도 마찬가지다. 야당은 돈 많은 사람,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도 돕자며 전면적 무상급식과 아동수당을 들고 나왔다. 덕분에 민주당이 예상 밖의 승리를 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 지속할 수 없는 정책이다. 워낙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계산이 그랬다. 4년 전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면 어느 정도 돈이 들어갈까 계산했다. 물론 보편적 복지는 아니었다. 무상급식 제안에 대해 재정이 악화된다며 거절했던 정부다. 노인 중 3분의 2가 연금을 받게 하고, 치매·중풍에 걸린 노인은 모두 장기요양 서비스를 받도록 하자는 정도였다. 그랬는데도 2030년까지 모두 1100조원이란 돈이 필요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만 한 규모다.

이명박 정부의 추산도 비슷하다. 보름 전 내놓은 ‘미래비전 2040’에서 현 수준의 복지만 유지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필요할지 계산했다. 2040년 한 해만 필요한 돈이 그해 GDP의 17.7%나 됐다. 고령화로 연금과 건강보험 지출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재정을 감안하면 복지를 늘릴 여력이 그리 많지 않다. 당연히 보편적 복지는 가당치 않다. 후손들이야 어찌되든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심보가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주장이다.

더 기막힌 건, 그러면서도 건전 재정을 외친다는 점이다. 사실상 국가채무가 1800조원이라느니, 국가채무 증가율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느니 하면서 말이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할 얘기는 아니다. 복지를 늘리면 재정이 악화되고, 재정 악화를 막으려면 복지 지출도 함부로 늘려선 안 된다는 건 상식이다.

태생이 포퓰리스트적인 민주당이야 그러려니 치자. 하지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다르다. 원칙과 신뢰를 중시할 뿐 아니라 차기 대권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정치인이다. 그런 박 전 대표가 며칠 전 “소득분배나 양극화 문제가 무척 중요하다”며 “국가부채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복지도 문제고, 재정도 문제다. 하지만 그만한 거물 정치인이라면 비판 차원을 넘어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복지와 재정의 딜레마를 풀 해법의 단초를 제시하는 게 옳다. 차제에 효율적 복지, 지속 가능한 복지를 주창하면 어떨까. 저소득층이라고 아무나 다 도와주지 말자. 같은 돈으로 지출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사람부터 차례로 도와준다면 딜레마를 풀 수 있을 게다. 그게 마땅치 않으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복지를 늘리려면 재정지출을 늘려야 하고 그래서 증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는 재정위기를 겪지 않으려면 보편적 복지를 해선 안 된다거나.

하나같이 표 깎이는 일이라 박 전 대표로선 내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용기 있고 원칙과 신뢰를 존중하는 정치인이라면 그래야 한다. 1959년 영국 총선에선 노동당이 집권할 뻔했다. 하지만 선거 막판에 승리를 굳힐 심산으로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공약한 게 패인이었다. 유권자들이 복지를 내세우면서 세금을 깎겠다는 약속을 정치적 뇌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 국민도 2년 반 뒤 대선 때는 영국처럼 변해있을 것으로 믿는다. 박 전 대표는 그렇게 생각하고서 달라져야 한다. 설령 표가 깎이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게 평소 강조하는 원칙에도 맞기에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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