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社 자율정비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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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신용카드 업계가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최근 발생한 연쇄 살인사건이 카드 빚과 연관돼 있고, 신용불량자가 양산되는 것도 카드회사가 무자격자에게 신용카드를 남발한 탓이라는 비난 때문이다. 카드 대출에 적용되는 높은 연체율, 높은 수수료율, 길거리 회원유치 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신용카드업계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정부 규제案 부작용 우려

정부가 최근 신용카드 업계에 대해 직접규제 위주의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개정안을 발표한 것도 부정적인 여론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주요 골자는 "2004년부터 현금서비스와 카드대출을 합한 업무비중을 50% 이하로 줄이고, 현금서비스 실적을 은행연합회에 의무적으로 집중시키며, 미성년자의 카드발급은 법정대리인의 사전동의를 의무화하고, 카드회원의 길거리 방문 모집을 금지한다"등이다.

신용카드 업계를 건전한 방향으로 육성하려는 정부의 의지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그러나 정부의 개정안은 고강도의 직접규제 중심으로 되어 정부의 의도와 달리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우선 카드사의 대출서비스 한도가 줄어들면 카드를 통해 급전(急錢)을 끌어쓰던 고객들이 결국은 사채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신용불량자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규제가 도리어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카드업계에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은행계열 카드업체는 지점을 이용할 수 있어 별 문제가 없지만 전문 카드사는 S카드, L카드의 경우 불과 46개, 40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어 고객 모집 접점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여성전용 신용카드를 개발해 선진국 카드업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는 등 신용카드 산업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은 카드 전문업체들에 이 시행령은 오히려 불공정경쟁을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지금 세계 경제의 추이는 범세계화인 만큼 정부규제도 신용카드 산업이 시장경쟁을 통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보완돼야 한다. 첫째, 미성년자의 신용카드 발급으로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을 예방하려면 미성년자의 신용카드 발급자체는 원인무효라고 규정하면 된다. 이들은 국가 미래를 위해 법이 당연히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둘째, 신용카드사의 건전성 규제를 강화해 부실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 적립 기준을 강화하자. 이렇게 되면 신용카드 회사들이 양적 경쟁보다 질적 경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셋째, 신용정보는 금융기관의 자산이므로 불량정보는 공유하고 우량정보는 서로 유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 이미 신용관리기금의 크레탑은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정보를 유료로 제공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중소기업 대출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넷째, 카드사의 현금대출 비중을 강제하기보다 각 카드사가 고객의 신용도에 따라 카드 현금대출의 한도를 설정하도록 하자. 그 기준이 잘못 설정돼 부실채권이 동종업체 평균보다 많이 발생하면 당국은 그에 상응하는 엄격한 제재조치를 취하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카드사가 불량채권을 추심하기 위해 불법행위를 하는지를 엄격히 감시해야 할 것이다.

질적 경쟁으로 전환할 때

카드업계의 신뢰회복은 카드회사에 달려 있다. 사실 한국의 카드사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에는 기업의 노력도 있지만 정책적인 배려도 컸다. 먼저, 정부의 진입규제 정책으로 인해 기존 7개 카드업체가 얻고 있는 독점적 이윤을 무시할 수 없다. 둘째, 2000~2001년 회계연도부터 카드 사용액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주었다. 그로 인해 카드이용금액은 99년 90조원에서 2000년과 2001년에는 각각 2백24조,4백43조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카드 안받는 사업자에게 세무조사 하겠다는 국가가 세계 어디에 있는가? 이는 카드사에는 백만 원군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정부의 카드 보급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카드사들도 자율적으로 신용카드의 남발이란 비난을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사업전략을 짜야 한다. 이제 카드업계도 무엇이 시장경제원리인지 진지하게 한번 연구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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