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상품에 멍드는 '쇼핑천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홍콩의 상점들이 '노동절 특수(特需)'를 누리고 있다.

중국인들이 7일간의 황금연휴를 맞아 쇼핑 관광을 위해 홍콩으로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완차이(灣仔)나 코즈웨이 베이의 상가를 걷다보면 점원들이 광둥화(廣東話·홍콩에서 쓰는 말)가 아닌 푸퉁화(普通話·중국 대륙에서 쓰는 표준 말)로 "들어와서 구경하라"고 말할 정도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쇼핑 품목은 첫째가 귀금속이다. 유명 브랜드의 시계나 사진기·휴대전화도 인기다. 연휴기간 중 대략 10만명의 중국인들이 홍콩을 찾아 5억 홍콩달러(약 8백50억원)를 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주룽(九龍)반도의 한 보석상에선 중국인 단체관광객에게 가짜 상품을 팔았다가 혼쭐이 났다.
이 가게는 쓰촨(四川)에서 온 9명의 관광객들에게 5점의 저질 다이아몬드 반지·목걸이·귀고리를 2만 홍콩달러에 팔았다.'롤렉스 신제품'이라며 20~30 홍콩달러에 불과한 손목시계 5개를 2만2천 홍콩달러나 받았다.

이들은 뒤늦게 다른 보석상에서 '진품'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고 아연실색했다. 물건을 판 보석상에 몰려가 "'가짜라면 10배를 배상한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다 점원들과 주먹다짐까지 했다.

중국인들이 홍콩에서 사기를 당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지난해엔 5백여건의 투서가 관계기관에 접수됐다. 산둥(山東)성 출신의 여성기업인 류윈팡(劉雲芳)은 "상당수 가게들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붙여놓고 '크레이지 세일'이라는 말로 내지(內地)관광객을 유혹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홍콩 경제는 죽을 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업체들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상도(商道)마저 내던지는 판이다. 홍콩인이 아니면 바가지를 씌워도 괜찮다는 심리마저 엿보인다.

홍콩은 한때 우리에게도 '쇼핑 천국'이었다.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를 세일해 주는 기간이면 홍콩행 비행기는 만원이었다고 한다. 그런 홍콩 역시 불경기란 괴물 앞에선 별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