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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알렉산더…'영웅 찬양' 장대한 서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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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2억4000만달러(약 2800억원)라는 거액을 들인 영화 '알렉산더'는 웅장한 전투 장면을 보여주면서도 카메라의 초점은 줄곧 서른셋에 생을 마감한 영웅 알렉산더의 생애에 맞춘다. '플래툰'(1986년), '닉슨'(1995년) 등의 영화로 현대사를 새롭게 조명했던 올리버 스톤 감독이 이번에는 알렉산더(콜린 파렐 분)라는 인물에 대한 재해석에 도전한 느낌이다.

전투나 원정 길에서의 일화가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영화는 플루타르크나 아리아노스 등의 고대 그리스의 전기작가가 남긴 기록에 충실한 듯하다. 하지만 감독은 알렉산더가 왜 그토록 동방원정에 집착했는지, 왜 정치적 모험을 해가며 이민족과의 융합에 앞장섰는지 등의 질문을 던지며 주인공의 내면을 새롭게 해석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생략과 과장이라는 서사극 특유의 장치가 있다. 다분히 감독의 의도가 담긴 그 극적 공간을 살펴본다.

▶ 아일랜드 출신 배우 콜린 파렐이 주인공을 맡은 영화 '알렉산더'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영웅 알렉산더의 내면 세계를 비추는데 카메라 초점을 맞췄다.

◆ 성장 배경=영화에는 알렉산더의 어머니 올림피아스(안젤리나 졸리 분)가 핵심 인물로 나온다. 영화 전반부의 대부분이 그녀가 어린 주인공에게 정치적 야심을 키우도록 가르치는 모습에 할애될 정도다. 고대 역사가들도 그녀를 기이하면서도 야심에 찬 인물로 묘사하며 주요 인물로 다뤘다. 하지만 알렉산더가 영화처럼 어머니에 대한 애증 때문에 괴로워하며 살았는지는 역사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다. 영화는 알렉산더가 마케도니아인이 아닌 타민족 출신의 어머니를 두고 있고, 따라서 순수 마케도니아 혈통을 지니지 못한 것을 늘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묘사한다. 감독은 민족과 이념을 뛰어넘은 하나의 세계를 꿈꾸는 알렉산더의 원동력을 개인적 성장 배경에서 찾은 것이다.

◆ 아버지와의 관계=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발 킬머 분)는 마케도니아 왕으로 그리스를 제패한 영웅이다. 역사에 따르면 그는 4m가 넘는 긴 창으로 무장한 보병대를 창설한 지략가이자 점령지 주민들에게 온정을 베풀며 덕을 쌓은 인물이다. 알렉산더가 동방원정으로 이집트에서 인도까지 영역을 넓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군대의 기틀을 마련하고, 아들에게 군주로서의 덕을 보여준 인생의 스승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는 방탕하고 변덕스러운 인물로 묘사된다. 마케도니아 순수 혈통을 중시한 아버지에 대한 아들 알렉산더의 반감을 부각하기 위해 아버지가 악역을 맡은 것이다.

◆ 주변 인물과의 갈등=알렉산더는 동방원정 기간 중 그를 왕으로 추대했던 동료이자 부하인 인물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는 것으로 그려진다. 세계를 통합해 보편적인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알렉산더와 고향으로 돌아가 안락한 삶을 누리려는 신하들의 대립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플루타르크의 기록 등에도 이런 갈등이 자주 언급된다. 하지만 가장 큰 반목은 귀향 문제가 아니라 신하가 왕에게 절을 하는 타민족 제도의 도입을 둘러싼 것으로 전해진다. 왕과 동료처럼 자유롭게 지냈던 이들이 "그리스의 자유인은 이를 따를 수 없다"고 저항했던 것이다.

영화에는 이 밖에도 인도에서의 승리, 귀향길 사막에서의 고난 등 역사적 기록과 다르거나 주요 사실이 생략된 부분이 더러 있다. 결국 영화 '알렉산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신분에 대한 콤플렉스를 딛고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세계를 꿈꾼 한 영웅을 칭송하는 올리버 스톤의 창작물임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상언 기자

*** 서점가도 '알렉산더' 바람

영화 '알렉산더'의 국내 개봉(31일)을 앞두고 관련 서적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BBC방송이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알렉산더'(닉 매카시 지음, 루비박스)는 기원전 356년 마케도니아 펠라에서 태어나 기원전 323년 바빌론에서 요절할 때까지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인도까지 진출해 헬레니즘 세계의 토대를 쌓는 과정을 보여준다. 알렉산더의 험난하기 그지없었던 동방원정의 길과 이루지 못한 꿈을 120여장의 원색 도판을 곁들여 설명한다.

'알렉산더-위대한 정복자'(폴 카트리지 지음, 을유문화사)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그리스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저자가 사료와 고고학 자료에 대한 고증을 통해 '객관적인 모습'을 제시한다. 프랑스 중세사와 서사문학 연구자인 프랑수아 슈아르가 쓴 '알렉산더'(해냄) 역시 실존 인물로서의 알렉산더와 신화적 존재로서의 알렉산더를 동시에 추적한다.

'알렉산드리아'(만프레드 클라우스 지음, 생각의나무)는 알렉산더의 이름을 따 만든 지중해 연안 고대 이집트 도시의 1000년 역사를 탐구했다. 해상무역과 지식문화의 총아로 일컬어지는 알렉산드리아의 역사가 상세하다.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피터 크리스프 글.피터 데니스 그림, 문학동네어린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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