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학림다방의 저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1956년부터 반세기 가까이 서울 종로구 명륜동 94번지 한 자리를 지켜온 학림(學林)다방. 대학로에 남은 마지막 전통 명소, 학림의 변신이 눈길을 끌고 있다. 길 맞은편에 있는 스타벅스·자바 같은 외국계 대형 커피 전문점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중이기 때문이다.

커피 맛으로 맞대결을 선포하고 양질의 원두를 직접 수입해 볶아 커피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학림' 브랜드의 커피 원두 판매사업도 시작했다. 현대적 로고와 홈페이지를 만들고 체인점을 확장하는 구상도 하고 있다.

학림은 과거 문인이나 예술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쉼터였다. 서른평 가량의 학림에 들어서면 나무로 만든 바닥에 목재 테이블, 천 의자, 고풍스런 내장, 고전음악 선율 등 옛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학림의 이런 이미지와는 다르게 사뭇 공격적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모두 변하는데 학림이라고 안 변할 수 있나요.외국계 점포가 대학로를 점령한 마당에 우리도 이젠 분위기가 아니라 품질로 승부해야지요."

학림의 네번째 주인으로 17년간 대학로를 지켜온 이충열(47)사장의 변이다.

◇전통만으론 안된다=대학로의 명물이던 오감도·진아춘·대학다방 등은 이미 오래 전 자취를 감췄다.학림과 같은 건물을 쓰던 고전음반 전문점(바로크 레코드)도 조만간 설렁탕집으로 바뀐다.

학림이 커피 한잔에 3천5백원 이상 받으면서도 대학로 명소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데는 나름대로 비결이 있다. 학림은 외환위기 이후 손님이 줄어 문 닫을 생각까지 했다. 2000년 초엔 세계 최대 커피 체인인 스타벅스의 국내 2호점이 바로 길 건너편에 둥지를 틀었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궁리 끝에 커피로 맞불을 놓기로 했다. 젊은층의 입맛이 이미 커피로 옮겨갔다고 판단하고 커피 외에는 손을 대지 않기로 '모험'을 한 것이다.

李사장은 원두 가공 기술이 발달한 일본의 유명 업체들을 방문하는 등 수년간 매진해 커피전문가가 됐다. 브라질·콜롬비아 등 세계 유명 산지의 원두를 들여다 가장 맛있게 배합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하루 20잔 넘게 커피를 마셔대며 연구했다.

李사장은 "주한 미국대사관·보스턴 컨설팅·한국셸 등에 근무하는 외국인들이 단골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학림의 한달 매상은 1천5백만~2천만원으로 이제 안정궤도에 올랐다.

◇수익원도 넓혀=학림은 더 이상 '다방'이 아니다.'제조·유통회사'로 변모하고 있다.학림 인근 주택을 개조해 5평 정도를 마련, 지난해 8월 대형 가공기계를 들여다 원두를 가공해 팔고 있다.

체인 구상도 가시화하고 있다.최근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의 어느 북 카페에 학림 브랜드의 점포 제안서를 냈다. 결과가 좋으면 전국 주요 대학 입점을 추진할 계획이다. 최근 학림 홈페이지(www.hakrim.pe.kr)를 만들어준 외국계 기업의 한 임원,현대식 로고를 만들어준 한 지방대 교수 등이 학림의 팬들이다.

홍승일·김준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