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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 평가의 형평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이하 '위원회'로 약칭함)는 지난 27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해직교사 1천1백39명과 세칭 '동의대 사건' 관련자 46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두 안건 모두 찬반 양론이 팽팽한 가운데 똑같이 찬성 5, 반대 3, 기권 1명으로 의결됐다.

6·29 이끈 시민의 공로는

위원회는 이례적으로 "법이 금지한 노조의 결성과 단체가입을 가입 당시에 소급해 이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교육의 특별관계성에 반하고 국민의식에도 합치하지 않는다"는 소수 의견도 함께 공개했다. 또한 "동의대 사건 관련자들에게 방화치사상 등 유죄가 선고되기는 했지만 살인에 고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그동안 위원회 내부적으로 의결 반발, 일부위원 사퇴, 발표연기 등 1년여에 걸쳐 진통을 겪어온 것만큼이나 그 결과에 대해서도 사회적 파장이 클 것임을 짐작케 한다.

현 정부들어 제정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는 1969년 8월 7일(3선개헌 발의일) 이후 민주화운동 중 사망 또는 행방불명된 사람의 유족에게 1억원, 부상 또는 질병을 앓은 자에게 최고 9천만원, 구금자에게 최고 7천만원, 해직자에겐 최고 5천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돼 있다.

위원회는 2000년 8월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3천5백여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그동안 위원회는 '적극적·전향적 자세 결여'라는 항의와 '민주화운동의 지나친 포괄적 해석'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아왔다. 특히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관련자들의 경우 이견의 간극이 컸다. 전교조 해직교사들의 경우 심의과정에서도 격론이 있었지만, 앞으로도 다음과 같은 쟁점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쟁점은 민주화운동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하는 점이다. 국가 차원의 인정 및 보상은 사회 전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거나 대다수 국민에게 혜택을 준 행위에 대해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전교조는 "인간화 교육실천을 위한 참교육 운동"을 지향하는 노동조합이다. 노동운동은 사회적 약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인정되는 것으로서 기본적으로 민주화운동과 궤를 같이한다. 전교조 해직교사들의 민주화 공로를 인정한다면, 유신정권의 강압적 노동통제에 저항하다 희생된 수많은 노동자들, '부마항쟁 사태'로 인한 희생자들, 1987년의 6·29 선언을 이끌어 낸 대학생과 지식인 및 시민의 공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둘째, 전교조에 참여하지 않은 여타 교원에 대한 평가문제다. 전교조는 실정법을 초월한 노조운동을 전개했고, 여타 교원은 법질서 내에서 교육을 통해 민주화에 기여하고자 노력했다. 전교조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다면, 묵묵히 교단을 지켜온 수많은 교원은 자연히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자괴심을 갖게될까 두렵다. 또한 현재 정부가 노조결성을 금지하고 있는 대학교수나 공무원들도 민주화를 위해 노조결성에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정치적 논공행상 안된다

셋째, 전교조 해직교사나 동의대 사건 관련자들을 사면 차원을 넘어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하면, 이들을 규제하고 처벌했던 기존의 법 체제나 공권력은 모두 독재정권의 잘못된 제도 내지 하수인으로 부정돼야 한다. 향후 법의 적용이나 집행에 나서는 사람들은 실정법에 따르기보다 먼저 현 정부의 성격을 판단해 '올바른' 행위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넷째, 지금까지 민주화 공로를 인정받은 사람 중엔 장관·청와대 비서관·여당 정치인 등 현 정부에 가까운 인사들이 많고, 이념적 지향이나 지역적 기반에 있어서도 현 정부와 친화성을 지닌 사람이 많다. 국민의 이름으로 인정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보상해 마땅한 민주화 공로가 자칫 정권교체 기여에 대한 보상이나 정치적 논공행상으로 오인된다면, 이것은 민주화 공로자들에 대한 큰 결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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