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세관 적발 밀수품으로 본 ‘욕망 변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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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본부세관 직원들이 24일 중국에서 밀반입하다 적발된 북극여우 암컷의 생식기를 정리하고 있다. 북극여우는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이다. [연합뉴스]

24일 인천시 중구 항동의 인천세관 압수품 창고구역. 한 창고에 유럽 유명 브랜드를 흉내 낸 중국산 짝퉁 핸드백과 의류·구두가 넘쳐났다. 또 다른 창고는 뱀·녹용·웅담 등의 보신식품과 비아그라 등 가짜 발기부전제로 가득했다. 창고 바닥에는 이날 처음 공개된 암여우의 생식기들이 널려 있었다.

인천세관은 이날 북극여우 암컷의 생식기 4900여 개를 몰래 들여온 혐의로 수입업자 심모(57)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심씨는 17일 중국 웨이하이(威海)를 출항한 컨테이너선 편으로 생식기를 도자기 상자 등에 숨겨 밀수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기도 안산에서 불교용품점을 운영하는 심씨는 여우 생식기를 수입해 점집이나 인터넷 쇼핑몰 등에 개당 5만원씩에 공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점집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이를 40만∼50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암여우 생식기가 인기를 끄는 것은 여성들이 이것을 지니고 있으면 바람난 남편이 돌아오고, 노처녀는 시집을 가게 된다는 속설 때문이다. 요즘은 룸살롱 등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에게 손님이 많이 꾄다는 이야기까지 더해졌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는 하녀인 귀녀가 지리산 강 포수에게 암여우 생식기를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최참판댁 당주인 최치수의 아이를 낳아 팔자를 고치겠다는 욕심에서다.

심씨는 수입한 여우 생식기를 부적과 돌복숭아 나무조각, 오색실과 함께 세트로 만들어 팔았다. ‘돌복숭아 나무에 남자의 이름을 적어 생식기와 함께 베개 속이나 장롱에 넣어두고 부적만 지니고 다니라’는 처방전도 넣었다.

인천세관에 압수되는 밀수품은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1960년대까지는 홍콩 등에서 들어오는 양복지·비로드·뉴동 등의 섬유제품이 많았다. 산업화 이후에는 밥솥 등 일제 전자제품과 보석류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최근에는 짝퉁 의류와 보신식품·발기부전제 등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3월에는 가짜 비아그라 120만 정이 한꺼번에 적발됐으며 지난해는 커피믹스형 가짜 발기부전제까지 등장했다. 인천세관 문미호 담당관은 “밀수품목도 선진국형으로 바뀌었다”며 “좀 지나면 마약이나 총기류가 판을 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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