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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모델車 정책 지켜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대우자동차는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GM)에 팔리고, 현대자동차는 미국에서 최신 자동차공장을 착공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업 30년 사상 의미심장한 두 행사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동시에 거행되었다.

오늘날 온 세계의 자동차산업계는 두 가지의 생산체계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GM 30년전 투자약속 펑크

첫째는 '고유 모델 차의 생산체계'이고, 둘째는 '외제 모델 차의 조립 체계'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고유 모델차 생산 9개국 중에서 제5위국의 자리에 올라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자동차산업의 본거지인 미국에서 생산을 하고, 세계 최대의 GM과는 안방에서 겨루게 되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었다.

1973년에 우리나라는 제조 없이 조립 대수만 연간 총 2만6천대에 불과했으며, 완성 승용차 생산과 엔진 공장은 전무했다. 그리하여 정부는 국가 중추사업으로 '한국형 고유모델 차 생산정책'을 추진했고, 이에 대해 GM코리아·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의 3사가 계획서를 제출해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GM만이 30년이 다 되는 오늘날까지도 아무런 투자를 시도한 바가 없다. 즉, GM 계획서를 믿고 한국 정부가 자주적인 자동차산업 육성책을 펴나가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 대만의 고유모델이 전무한 자동차산업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현대차의 적시투자와 함께 우리나라의 멍에인 생산시설의 낙후, 기술력의 부족, 신뢰성 결여 등에서 벗어나 체질혁신을 이루어냄으로써 우리 자동차산업이 세계화의 기반을 확립하게 되었다. 오늘날 미국의 앨라배마에서는 한국 최대의 현대자동차가 세계 최신의 자동차 공장을 착공하는 역사적 광경이 펼쳐졌다. 반면, 국내에서는 곧 세계 최대의 GM이 한국 제2위의 대우자동차를 흡수하게 될 전망이다. 세계 자동차공업사상 두 가지 상반된 행사가 우연히도 같은 달에 이뤄지게 되었다.

대우차의 비극과 현대차의 행운은 오직 한 가지, 한국형 모델 생산 계획을 거부한 'GM의 축'에서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GM의 축'에 의해 대우차는 고유 모델 차 정책을 따를 기회를 박탈당한 데다 불의의 IMF사태를 맞이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다. 'GM의 축'은 GM이 대우차와의 합작관계를 폐기하면서까지 대우 모델 차의 개발과 폴란드 진출 문제를 저지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는 또한 73년부터 92년까지 20년 동안 현대차와 GM코리아(GMK)의 생산·수출 결과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즉, 현대의 고유모델 차 생산 실적이 GMK의 외제차 조립 실적에 비해 20년간 무려 3백39만대나 더 많으며, 수출대수의 차이도 1백99만대로서 이는 무려 5.7배에 달하는 것이다('2000한국의 자동차 산업'·한국자동차공업협회).

반면에 73년의 중동전쟁과 1차 석유파동 속에서도 역설적인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15년만인 88년, '서울올림픽의 해'에 이미 연산 1백만대를 돌파하는 자동차산업계의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이로 인해 IMF사태가 오기 1년 전인 96년에는 우리나라가 일약 세계 제5위의 자동차 대국으로 부상했다.

위탁경영은 공장'안락사'

오늘날 대우자동차가 GM에 넘어가게 되었다. 정부는 정책마저 매각대상에 포함시켜서는 안된다. GM이 한국의 자동차 기술 개발에 대해 공약하고 이행치 않은 사실을 정부는 본계약 체결에 앞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즉, 한국 정부에 공약한 한국형 고유 모델차 생산정책의 이행을 이번의 본계약에 명기해야 한다. 또한 GM의 잭 스미스 회장은 몇번이고 부평공장을 인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따라 GM은 기상천외의 '위탁경영'방식으로 부평공장을 운영하겠다고 하면서, 이를 인수하지 않고 연구개발(R&D)부분만 인수한다고 한다. 이는 부평공장을 '안락사'시키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GM이 매수할 의사가 없는 공장이라면 GM에 의해 폐기시킬 것이 아니라 부평공장을 아끼는 한국 국민에게 넘겨주는 것이 한·미간 우호증진에도 기여하는 바가 클 것이며, IMF사태를 슬기롭게 극복한 상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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