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있는아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버스가 모퉁이를 도는 순간

햇빛이 유리창처럼 떨어졌다

아찔!

나무가 새겨진다

햇빛이 미세하게

벚꽃들 깎아낸다

벚꽃들, 뭉게뭉게 벚꽃들

청남빛 그늘 위의

희디흰 눈꺼풀들

부셔하는 눈꺼풀들

네게도 벚꽃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내게도

-황인숙(1958~ ) '아직도 햇빛이 눈을 부시게 한다'

구름처럼 피어난 화사한 벚꽃들 눈이 부시다. 눈이 부셔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저 벚꽃같이 화사한 날들이 네게도 내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의 정신은 너무 게으르고 나의 삶에는 '왜'가 없다, 눈부시게 하는 건 벚꽃과 햇빛 뿐. 부신 생(生)이 없다. 새들은 자유롭게 하늘을 풀어놓는데….

천양희<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