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제2부 薔薇戰爭 제3장 虎相搏:안압지 酒宴에는 음모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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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김우징이 밤새 도망쳐 청해진으로 찾아가 장보고에게 몸을 의탁하였다는 소문을 들은 김명은 불과 같이 노하였다. 김명이 김우징을 눈의 가시처럼 생각하여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어하면서도 차마 죽이지 못하였던 것은 김명의 누이 흔명(昕明) 때문이었다.

상대등 김균정은 상처한 후 후처를 얻었는데, 이 여인이 바로 김충공의 딸이자 김명의 큰누이였던 흔명 부인이었던 것이다. 김명이 옹립하여 희강왕이 된 제융도 김명의 누이였던 문목 왕후의 부군이고 보면 김명에 의해서 시해당한 김균정도 김명의 매형이고, 새로 왕위에 오른 제융도 똑같은 매형이었던 것이었다.

남편이 난병에 의해서 죽자 흔명 부인은 자신의 남동생 김명을 찾아가 울면서 말하였다.

"네가 어찌 한 아비 속에서 나온 골육으로서 내 남편을 죽일 수가 있단 말이냐."

김우징은 자신이 낳진 않았지만 호적상으로는 흔명 부인의 아들. 김명은 차마 누님의 남편이었던 김균정과 그의 아들인 김우징을 동시에 한꺼번에 죽일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제거하여 훗날의 화근을 없애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김우징이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쳤던 것이었다.

그것도 청해진대사 장보고에게 몸을 의탁하였다는 것이었다.

장보고.

그는 이미 신라의 조정에서도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선왕으로부터 인정받은 만명의 군졸들을 거느리고 바다를 진수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당나라와 왜에 이르는 남해의 전 바다를 장악하고 막강한 선단을 통해 엄청난 재화를 벌어들이고 있었던 최고의 권력자였던 것이다. 뿐 아니라 그가 다스리고 있었던 청해진은 신라의 법령이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지대인 별개 왕국이었던 것이다.

"대왕마마."

김명은 자신이 직접 대왕마마 침전으로까지 쳐들어가 소리쳐 말하였다.

"김우징을 청해진에 몸을 의탁케 한 것은 아찬 예징과 그의 무리들 때문이나이다. 당장에라도 그들을 붙잡아 참형에 처하옵소서."

예징은 김우징의 매서로서 일찍이 함께 힘을 모아 김균정을 옹립하였던 천적이었다. 김명에 의해서 뜻하지 않게 왕위에 오른 제융, 즉 희강왕은 권력에는 뜻이 없었던 백면서생. 침전에까지 칼을 차고 들어와 협박하는 김명의 말에 엉겁결에 승낙은 하였으나 차마 예징을 죽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때 마침 나라에서는 큰 경사스런 일이 있었다.

왕자 김의종(金義琮)이 당나라에서 귀환한 것이었다. 선왕이었던 흥덕왕 말년에 당나라의 문종에게 보내어 숙위케 하였던 김의종이 신라로 돌아왔으며, 또한 그 뒤를 이어 숙위하던 김충신(金忠信)에게는 금채(錦彩)를 내려 양국 간에 우호를 치하하였던 것이다.

금채라 하면 비단을 채색하는 이금()이나 금가루를 뜻하는 것으로 삼국통일 이후 서로 혈맹관계에 있던 당나라가 비록 쿠데타에 의해 새로운 왕이 즉위했지만 이를 승인하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인 경하스런 일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당나라는 왕자 김의종을 신라로 돌아올 때 문종이 내리는 관작까지 가지고 온 것이었다.

이에 대해 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4월. 당의 문종이 숙위 중이던 신라의 왕자 김의종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그리하여 6월.

궐내에서는 성대한 주연이 벌어지게 되었다. 주연이 벌어지게 되어 있던 장소는 안압지. 동궁에 속한 연못으로 삼국을 통일한 문무대왕이 이 지상에서의 무릉도원을 만들기 위해서 조성한 정원이었다.

『삼국사기』문무왕 14년 2월 조에 의하면 '궁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안압지에서 주연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김명은 바로 그 주연에서 아찬 예징과 또한 그의 일당인 양순(良順)을 제거하기로 거사 날짜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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