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 플레이어 한국 천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9면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세계적 기업인 소니를 어떻게 이겼는지 집중적으로 묻더군요. 뿌듯했습니다."

MP3 CD플레이어 제조 벤처기업인 레인콤의 양덕준 사장은 최근 10일 동안 미국에서 프레스투어를 했다.

회사와 신제품인 '슬림엑스-아이리버'를 월스트리트저널·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과 IDC·가트너그룹 등 컨설팅업체들에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양사장이 만난 언론사와 컨설팅업체는 모두 22곳. 레인콤이 사전에 프레스투어를 하고 싶다고 요청해 거절한 곳은 거의 없었다. 이 회사가 미국 시장에서 거둔 놀라운 성공담이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슬림엑스의 미국 내 판매가격은 대당 1백99달러. 소니 제품의 1백79달러보다 비싸다. 그러면서도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은 30%나 된다. 레인콤이 세대 팔 때 소니는 한대밖에 팔지 못했다. 레인콤의 올해 수출 목표는 지난해보다 2백50% 늘어난 1백40만대다.

세계 MP3플레이어 시장에서 한국 벤처기업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한국은 세계 MP3플레이어 시장에서 '생산기술 종주국''세계 최대 수출국가'로 대접받으며 세계 시장의 60%를 장악하고 있다.

IDC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MP3플레이어 전체 보급대수는 3백60만대(약 3억달러).

이중 약 2백만대를 한국산이 차지했다. 미국 다이아몬드·크리에이티브 등 벤처기업과 일본 소니, 네덜란드 필립스 등이 맹렬하게 추격해 오고 있지만 2005년 32억달러 규모로 급속히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 이 황금시장에서 아직 한국 벤처기업을 제칠 라이벌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메모리칩 등 필요 부품의 대부분을 국내에서 자급할 수 있는데다 기술종주국답게 많은 기술특허를 확보하고 있어서다. 또 휴대전화에서 경험했듯 한국 특유의 깜찍한 디자인 설계 기술도 소비자들로부터 호평받고 있다.

성공 스토리는 새한정보시스템이 1997년 12월 세계 최초로 휴대용 MP3플레이어를 개발하면서 시작된다. 주역은 엠피맨닷컴의 문광수 사장. 문사장은 당시 새한정보시스템 사장으로 근무하며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컴퓨터에 내장된 MP3음악을 듣는 휴대용 기기를 만들면 히트할 것으로 생각해 개발에 나섰다"고 말했다.2000년 1월 문사장은 MP3사업부를 분사, 엠피맨닷컴을 창업했다.

디지탈웨이의 우중구 사장은 서울대에서 조선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중공업에서 컨테이너선을 설계했던 엔지니어였다. 하지만 운동장보다 더 큰 초대형 컨테이너선에 손바닥만한 MP3플레이어를 가득 실어 수출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98년 창업했다. 디지탈웨이의 전략은 기술력과 디자인 능력 확보. MP3플레이어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상품이라서 패션과 디자인에서 승패가 갈린다고 본 것.

이 회사의 제품 디자이너는 6명으로 전체 개발인력(25명)의 20%가 넘는다. 우사장은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려면 기술력과 디자인 능력을 함께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 시장점유율은 약 10%.

'아이오디오'란 MP3플레이어를 생산하는 거원시스템의 박남규 사장도 끼있는 벤처기업 사장으로 유명하다. 박사장은 서울대 제어계측학과에 다닐 때 학내 '마이크로 로봇 경진대회'에서 3년간 1위 자리를 차지하며 우수한 머리와 손재주를 자랑했다.

95년 거원시스템을 창업한 뒤 멀티미디어 재생 소프트웨어(SW)인 '제트오디오'로 눈길을 끌었고, 지난해 MP3플레이어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거원은 보급형 MP3플레이어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박사장은 "MP3플레이어 시장에 '늦깎이'로 들어왔지만, 목표는 국내외 가릴 것 없이 1등"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시라큐스대학에서 컴퓨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로비전의 고진 사장은 94년 창업, 처음엔 영상기기 부문에 주력하다 MP3플레이어쪽으로 눈을 돌렸다. MP3플레이어에 다양한 기능을 추가한 복합 제품이 바로비전의 주특기.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인 바로맨플러스는 MP3플레이어는 물론 MS 오디오 플레이어, 디지털음성녹음기, 전자수첩, 휴대용데이터 저장장치 등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고사장은 "앞으로 MP3플레이어의 복합화, 퓨전화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현원·아이앤씨 등 많은 벤처기업들이 탄탄한 기술력을 갖고 제품을 내놓고 있어 MP3플레이어 시장에서 한국 강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하지윤 기자

◇MP3플레이어란=인터넷 등으로 주고 받는 MP3 음악 파일을 저장해 들고 다니면서 들을 수 있는 휴대용 기기. CD나 테이프 대신 내장된 메모리에 음악을 녹음했다 재생하기 때문에 워크맨 등에 비해 크기를 대폭 줄일 수 있다. MP3 파일은 MPEG1 오디오 레이어3 규격에 맞춰 압축한 오디오 데이터로, 음질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CD에 수록된 음악을 10분의1 정도 크기로 줄일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