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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코드 달라져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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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인사철이다. 내년 초 부분 개각이 예고되면서 관가는 물론 시중의 관심이 인사의 내용과 폭에 쏠리고 있다.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이 현 정권의 상징물인 '코드 인사'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220V에다 110V 코드를 꽂으면 타버린다는 점에서 코드와 철학은 맞아야 하고 대통령과 철학이 안 맞으면 같이 못 간다." 이 원칙은 이번 내각 개편에도 그대로 적용될 전망이다. 인사수석이 언급한 교체 기준은 오래 했고, 지친 장관들이다. 장기간 업무 수행으로 녹초가 된 장관 개인을 위해 개각하는 것으로 들린다. 심신이 피폐해진 장관의 휴식이 개각 사유라니 안될 말이다.

실업률이 3.5%에 이르고, 내년 경기는 올해보다 더 불황일 것이라고 한국은행과 민간경제연구소들은 연일 암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부정행위와 난이도 조절 실패로 만신창이가 된 수능 때문에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 대학 고르기를 하는 수험생과 학부모.교사의 한숨은 하늘을 찌른다. 누가 더 피곤한가. 결코 장관이 아니다. 정부의 무능과 무사안일, 복지부동, 오락가락에 넌덜머리가 나 일찌감치 기대를 접어버린 국민이다. 개각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초주검이 된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분위기 전환과 더불어 국정 쇄신용이어야 한다.

광화문과 정부 과천청사 주변에서는 어느 장관이 경질 대상이고 후임은 누구인지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개각 이후 뒤따를 차관급 인사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한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관료들의 발걸음 또한 분주하다. 지연과 학연 등 갖은 인맥을 동원해 온갖 로비를 다하고 있다니 3000여명이나 된다는 이 정권의 인사 파일이 무색할 지경이다. 특히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을 노리는 조직 내.외부 유력자의 '인사 운동'은 도가 지나쳐 눈살이 찌푸려진다. 송광수 검찰총장은 내년 4월, 최기문 경찰청장은 내년 3월에 2년 임기가 끝난다. 국회의 인사청문회 일정을 감안하면 후임자는 각각 3월과 2월께 내정돼야 한다.

모 부처의 고위 간부는 마치 검찰총장직 언약을 받은 양 과시하다 눈 밖에 났다는 소문도 들린다. 한 경찰간부는 여권 내 실력자를 앞세워 "한번 기회를 달라. 잘할 수 있다"고 읍소작전에 열중이라는 전언이다. 경찰을 떠나 다른 유사한 직무를 맡고 있는 모 인사는 권토중래를 위해 구여권의 인맥을 동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또 여성 21명 살해범 검거와 수능 휴대전화 메시지 부정행위 수사를 업적으로 홍보하거나, 거론되는 후보들이 죄다 행정고시 출신이어서 구성원 대다수가 비고시인 조직의 사기를 떨어뜨리므로 간부후보가 적임이라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특정 자리를 겨냥한 줄대기가 무성한 것은 그만큼 로비력이 주효하다는 방증이다.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은 사정과 치안을 총책임진 막강한 권력기관이다. 대통령이 충분히 정실 인사를 하고픈 유혹을 느낄 만한 자리다. 지난 정권에서 보았듯이 지연 등 특정 코드를 바탕으로 한 인사는 성공하기 힘들다. 한때는 수사에 개입하거나 부적절한 처신으로 중도 하차한 검찰총장도 있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지만 공안사건을 소홀하게 처리한 혐의로 옥고를 치른 경찰총수도 있다. 동종교배식 인사의 폐단이 아닐 수 없다. 현 정권이 출범하면서 두 자리에 비교적 무난한 인사를 하고 간섭을 줄여 검찰과 경찰이 독립성을 어느 정도 확보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후임 인사의 코드는 '대통령의 철학과 맞는 다루기 쉬운'이 아닌 '권력을 의식하지 않고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도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