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 한·일 정상회담] '가짜 유골' 해법 싸고 양국 시각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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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17일 오후 일본 가고시마현 이부스키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회담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가고시마=최정동 기자]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지난 7월 제주에 이어 '노타이' 차림으로 일본 가고시마현 이부스키시에서 다시 만났다. 일본 최남단의 온천 휴양지다. 허심탄회한 대화로 두 나라 정상이 현안을 풀어 가자는 셔틀 외교의 일환이다. 그러나 북핵 국면이 엉켜 있고,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짜 유골' 논란 속이어서 화제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 무게중심 다른 '가짜 유골' 해법=고이즈미 총리는 정상회담 직후 공동 회견의 모두 발언에서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 대통령과 한국도 일본의 대응을 이해하고 지지한다는 고무적인 말을 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도 "납치 문제로 어려운 입장을 표명한 일본 측의 신중한 입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모두 발언만 보면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직후 일문일답에선 '가짜 유골' 사태를 보는 두 정상의 미묘한 시각 차이가 드러났다.

노 대통령은 납치와 유골 문제를 놓고 일본 측이 북한에 대해 경제 제재를 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하지만 무게중심은 냉정하고 신중한 대응을 요구하는 쪽에 가 있었다. 혹시 북한의 착오나 실수가 있을 수 있다고 했고, 성급한 경제 제재라는 대응책보다 좀더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북.일 수교와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은 동북아 평화.번영을 위한 일본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이자 목표"라며 "성급한 판단은 일본의 국익에도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6자회담 조기 재개를 위해 공들여 조성해 온 유화 국면이 '가짜유골' 문제로 일거에 흐트러질 가능성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납치 문제는 일.북 양쪽의 문제이나 6자회담은 미.중.러.일의 공통 과제인 만큼 6자회담의 틀을 중시해 가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에서 생존 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사람들의 신속한 규명이 우선 중요한 만큼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은 더 사실을 밝히도록 북측에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북측의 대응을 일단 지켜보고 경제 제재가 어떤 것이 있는지도 생각해야겠다"고 했다. 제재를 통한 대북 압박의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놓은 것이다.

◆ 평행선 달린 '과거사 정리'=노 대통령은 과거사 극복 방안에 관한 일본 기자의 질문에 "한국이 감정적 차원에서 역사 문제를 제기할 것이 아니라 일본 내에서 제기되고, 일본 국민의 도덕적 결단으로 풀어 나가는 게 필요하다"는 지론을 재확인했다. '결자해지'의 원칙이다. 노 대통령은 "약한 사람의 관용은 비굴로 보이지만 역량 있는 강대국의 관용은 겸손.미덕일 수 있다"고도 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한국 측 기자가 '망언''전범' 등의 표현을 써가며 과거사와 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를 거론하자 일순 표정이 굳어졌다. "상당히 지적한 부분이 많다"며 운을 뗀 그는 "일본 정치인의 발언 중 한국 분들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드는 발언도 있으나 노 대통령이 지적했듯 객관적인 역사의 공동 연구가 진행 중인 만큼 미래 우호협력 관계를 살리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신사 참배에 대해선 "당시 상황에서 많은 국민이 본의 아니게 전쟁에 갔고 목숨을 잃었다"며 "현재 평화.번영의 바탕이 된 선인들의 이 같은 노력.희생에 경의와 감사의 뜻으로 참배하는 것"이라고 말해 중단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은 회담에 앞서 "여기가 총리의 고향이냐"라고 인사를 건넸고, 고이즈미 총리는 "그렇다. 아버님의 고향"이라고 답했다. 노 대통령이 "아주 좋은 곳에서 태어났다"고 하자 고이즈미 총리는 "나는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여기서 태어났다"며 "내가 여기 온 지도 40년 만"이라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부친인 고이즈미 준야는 가고시마현 가세다시의 빈농에서 태어나 '고이즈미가'에 데릴사위로 입적한 뒤 자민당 부간사장 등을 거쳐 1964년 방위청 장관을 역임했다.

◆ 마이니치 회견=노 대통령은 17일 마이니치 신문 인터뷰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언제, 어디서든 형식에 상관없이 환영하나 국민 앞에 정책으로 공표하고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가능성이 작은 정책을 발표하면 국민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만나게 되면 핵문제가 의제로 될 텐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 회담에서 핵문제를 취급하는 게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고시마=최훈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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