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이 맑으니 전복이 맛있제.”
해녀 생활 35년째라는 고순심(55)씨는 전남 청산도 전복 자랑을 늘어놨다.
“전복은 이 바위 저 바위 옮겨 다니면서 해초를 뜯어 먹고 살거든. 그러니 전복이 먹는 자연이 깨끗해야 전복도 좋제. 여긴 물이 에메랄드빛이잖여.” 또 다른 해녀 손애순(59)씨가 거들었다.
서두름과 간섭 없는 곳에서 자연이 오랜 시간 품어냈을 때, 슬로푸드는 비로소 완성된다.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해녀 고순심 씨가 갓 딴 전복을 들어보이고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청산도 해녀들의 자랑거리다.
청산도는 국내에 6개 있는 슬로시티 중 한 곳이다. 전복은 이 슬로시티가 지정한 슬로푸드다. 슬로푸드란 ‘제 고장에서 난 제철음식’을 말한다. 주로 오염되지 않은 우리 땅에서 천천히 자라난 것들이다.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에 대한 반발에서 생겨난 말이다. 1986년, 이탈리아 로마의 스페인 광장에 맥도날드가 들어온 것에 충격 받은 요리 칼럼니스트 카를로스 페트리니가 ‘미각의 즐거움, 전통음식 보존’을 기치로 내걸고 쓴 게 처음이다. 지금은 100여개국 8만여 명이 참여하는 세계적 규모의 운동으로 성장했다. 식생활에서조차 ‘빠름’과 ‘표준화’가 미덕인 현대 사회에, 슬로푸드는 ‘느림’과 ‘지역화’로 반기를 든 것이다.
해녀들이 연신 건네준 전복. 시내호의 홍춘복(57)선장은 “전복은 통째로 먹어야 영양분이 빠져나가지 않는다”며 껍질만 떼 줬다. 통째로 씹는 전복 맛은 쫄깃쫄깃했다.
우리나라에선 25일 ‘제3회 슬로시티 총회’가 열린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슬로시티의 슬로푸드들이 전 세계에 소개될 예정이다. 그래서 슬로푸드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 세계인을 매료시킬 우리의 슬로푸드를 먼저 맛보러 말이다. 여섯 개의 슬로시티 마을엔 ‘느림’의 매력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는 슬로푸드들이 있었다.
글·사진=이상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TIP 한국의 슬로시티는 6곳
슬로시티란 슬로라이프를 실천하는 마을로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지정한다. ‘느리게 먹기’와 ‘느리게 살기’가 주요 가치다. 첫 슬로시티는 이탈리아의 그레베 인 키안티로 1999년 지정됐다. 한국에선 2007년 신안 증도, 완도 청산도, 장흥 유치, 담양 창평이 슬로시티가 됐으며, 지난해 하동 악양과 예산 대흥이 뒤를 이었다. 전 세계의 슬로시티 시장 70여 명이 4박5일 동안 한국의 슬로시티들을 돌아보는 대규모 국제행사인 ‘제3회 국제 슬로시티 총회’가 25일 한국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