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공 출신 성악가 예술의 전당서 주역 : '카르멘'공연하는 이점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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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번 공연은 고국 최고의 무대에서 제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귀중한 자리죠. 신명을 바쳐 노래 부를 겁니다."

오는 18~2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베세토 오페라단의 '카르멘' 공연에서 주역으로 출연하는 소프라노 이점자(李点子·41)씨. 그는 이번 무대의 이틀째(19일) 공연에서 남자 주인공 돈 호세를 짝사랑하는 시골 처녀 미카엘라 역을 맡아 그동안 외국에서 갈고 닦은 솜씨를 국내 음악팬들에게 선보인다.

이번 무대는 그에게 '여공 출신의 성악가'라는 꼬리표를 떼어 내고 순수하게 성악가로서 평가받는 자리다. 10년간의 오스트리아 유학을 끝내고 귀국, 지난해 모교인 창원대 음대의 시간강사로 강단에 선 그는 올 봄학기부터 겸임교수로 수원과학대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요즘 창원과 수원을 오가며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시간이 부족하지만 국내 최고의 무대에 데뷔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렙니다."

봄날 활짝 핀 꽃처럼 활기찬 그에게도 암울하고 절망적인 때가 있었다. 전남 담양군의 가난에 찌들린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돈벌이를 위해 중3때 학업을 중단할 뻔했고 고교 시절에는 방직공장에서 하루 여덟시간씩 일해야 했다.

李씨가 성악가로 성공한 것은 오로지 음악에 대한 집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렵게 창원대 음대에 진학했지만 졸업한 뒤에는 경제적인 독립을 위해 음악학원을 차렸어요. 하지만 성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1991년 그는 4년 동안 운영하던 학원을 처분하고 음악의 본고장인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음악을 배우기에는 한참 늦은 서른하나의 나이였다.

만학이었지만 앞만 보고 달린 덕에 그는 빈 프라이너 콘서바토리움 성악과와 오페라과를 수석졸업하고, 빈 국립대 음악과를 마쳤다. 빈 국립대 연극영화과 교수인 남편 크레치마이어는 그의 적극적인 후원자였다. 12세 연상인 그와 결혼해 아들 파울(11)이 생기자 음악 공부를 그만두려 한 적도 있었지만 남편의 설득으로 계속할 수 있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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