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차기 日 총리감 '돈정치'스캔들로 침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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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때 일본 정계의 '황태자'로 불리며 유력한 차기 총리감으로 꼽히던 가토 고이치(加藤宏一·62·사진)전 자민당 간사장이 8일 전격적으로 의원직을 사퇴했다. 가토의 퇴진은 일본에서도 구시대적 돈정치 행태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가토는 이날 비서의 탈세사건과 관련해 중의원에서 의원들의 질문공세에 시달리던 중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정치자금을 관리하던 비서가 탈세로 구속돼 비난이 쏟아지자 지난달 자민당을 탈당, 사태를 무마하려 했으나 공금인 정치헌금 9천만엔(약 9억원)을 자신의 아파트 집세 등으로 쓴 의혹이 추가로 드러나자 결국 의원직을 내놓은 것이다. 가토는 8일 국회 답변에서 공금으로 집세를 낸 사실을 인정하고 탈세 여부에 대해서는 "국세청·검찰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도쿄(東京)대 법학부 출신의 가토는 1972년 고향인 야마가타(山形)현에서 중의원 의원에 당선한 이래 연속 10선을 기록하고 있다. 방위청 장관과 자민당 간사장·정조회장 등을 지내 일찍부터 총리감으로 점찍혀 왔다.

그러나 99년 자민당 총재선거에 나섰다가 패배한 데 이어 2000년 11월에는 총리직을 노리고 야당이 낸 모리 요시로(森喜朗) 당시 총리 불신임안에 동조하는 '가토의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정치입문 '동기생'으로 절친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가 총리가 되면서 재기를 노리다가 이번 스캔들로 몰락한 것이다. 그의 퇴진으로 고이즈미 총리의 정치기반은 한층 약해졌다.자민당 내 세대교체 움직임도 빨라질 전망이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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