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0> 제101화 우리 서로 섬기며 살자 (9)카터 대통령 방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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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976년 11월 제39대 미국 대통령에 지미 카터 조지아주 주지사가 당선되었다. 카터 대통령은 취임식에 김익준 의원과 나를 초청했다. 주지사로 재임하던 1973년에 자신을 찾아 "주지사 일을 잘 수행해 대통령에 당선되라"고 격려해준 우리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건 카터가 당선되자 우리 정부는 크게 긴장했다. 하지만 카터로서도 무작정 주한 미군을 철수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취임 후 당초의 계획을 크게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이 국방비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고수하고 있었다.

카터 대통령은 79년 6월에 한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의 방한을 두 달 앞두고 나는 김연준 한양대 이사장과 함께 백악관을 찾아 카터 대통령과 30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이어서 우리는 조지아주에 있는 카터의 땅콩밭으로 가 그의 어머니 릴리안 카터 여사에게 한양대학교의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이 일은 주한미군 철수를 막아보겠다는 일념에서 계획한 것이었다. 나는 국가에 보탬이 될만한 미국 인사가 있으면 김이사장에게 부탁하여 한양대 명예박사학위를 준 일이 여러 번 있다.

마침내 카터 대통령은 우리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아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1차 정상회담이 열린 날 저녁 청와대에서 리셉션이 열렸다. 그 자리에는 국내 유명 인사 3백여명이 참석하여 줄을 서서 정상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카터 대통령 부인 로절린 여사는 우리 부부에게는 악수 대신 포옹을 해 줘 눈길을 끌었다. 악수를 할 때 박정희 대통령이 아내 트루디를 유심히 살폈다.

다음날 아침 카터 대통령이 예배를 올리기 전에 한국 종교지도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요청해와 김수환 추기경, 그리고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개신교 대표들이 미 대사관저로 모였다. 그 자리에서 카터 대통령은 참석자들에게 나를 '마이 프렌드 빌리 김'이라고 소개했다.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나는 한국을 방문해 준 것과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앞으로도 한국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했다.

대사관저 모임이 끝나고 돌아가려 할 때 카터 대통령이 나를 따로 불러 "예배를 함께 드리러 가자"고 제의했다. 나는 "의전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 가겠다"고 대답했다. 모임이 끝난 후 나는 카터 대통령 내외와 딸 에이미 양과 함께 리무진을 타고 여의도침례교회로 향했다.

나는 차안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애국자이며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당시 인권탄압 때문에 주한미군 감축문제가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국가 원수를 좋게 부각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 얘기를 듣던 카터 대통령은 "일본 방문 때 후쿠다 총리도 박정희 대통령이 애국자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나는 카터 대통령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예수를 전해 주세요. 예전에 만나서 기도해 드린 적이 있는데 기독교에 호감을 갖고 있으니 전도하면 좋은 성과를 얻을 겁니다."

카터 대통령은 내 얘기를 귀담아 들었다. 여의도광장을 지날 때 이곳이 예전에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때 연인원 3백20만명이 모였던 곳이라고 설명해줬더니 흥미롭게 바라봤다.

박 대통령에 전도해 달라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던지 그해 8월 6일자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지는 이 내용을 상세하게 다루었다.

카터 역시 박대통령과 종교 이야기를 나눈 것이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지난해 8월 국제해비타트가 펼치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위해 한국을 찾은 카터는 "빌리, 박대통령이 예수를 믿었는지는 지금도 궁금해요"라고 말했다.

여의도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차지철 경호실장으로부터 긴급 전화가 왔다. 예배가 끝나면 곧장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전갈이었다. 그래서 카터 대통령은 국회로, 나는 청와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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