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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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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호 34면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된 제46회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 총회에 다녀왔다. ASCO는 두 가지 점에서 감동이었다.

하나는 한국 사람이 전 세계 4만2000명의 의학자가 모인 ASCO 총회의 최고 스타였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방영주 교수였다. 폐암 치료 관련 약제에 대한 1상(중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 연구를 수행한 방 교수의 논문이 ASCO 최우수 논문으로 뽑힌 것이다. ASCO는 전 세계 종양내과 학자들의 올림픽 같은 것이다. 방 교수는 “의학자로서 평생의 꿈을 이룬 것 같다”고 했다.

그게 왜 ‘꿈’이었는지는 6일 오전 8시 ASCO 총회장에서 알 수 있었다. 컨벤션 센터인 매코믹 플레이스(McCormick Place)엔 1만2000명의 의료 관계자가 운집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아침에 그 많은 사람이 장내를 꽉 메웠고,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문 밖에 서서 총회 논문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 교수는 명료하고 강력한 화법으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폐암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암이며, 이 중에서도 비소세포폐암은 폐암 환자의 85%를 차지하는 난치성 암이다. 방 교수의 임상 결과 논문은 표적 치료제를 통해 비소세포폐암 중 특정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환자들의 치료율이 크게 올라간 것을 보여주었다.

비소세포폐암 4기 일본인 환자에 관한 발표도 감동이었다. 이 환자는 일본 병원에서 치료가 어렵게 되자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으로부터 “한국으로 가라”는 의사소견을 받았다. 망막까지 암이 전이돼 거의 장님으로 우리나라에 왔다 치료를 받은 뒤 눈을 떠서 돌아가는 모습은 기적에 가까워 보였다.

총회가 계속되는 동안 방 교수 외에도 한국 의료진의 우수함이 점진적으로 세계 의료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병을 못 고쳐서 미국이나 일본으로 환자가 나가던 시절은 이제 옛 얘기가 되고 있다. 이젠 하버드 의대에서도 “한국으로 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의 의료 기술이 빠르게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ASCO에서 받은 또 하나의 감동은 컨벤션 산업의 규모다. 며칠을 지내는 동안 나와 동료들은 “이 돈이 다 얼마야?”를 연발했다. 역대 ASCO 총회 규모 중 최대였다는 이번 행사 참여 인원은 4만2000명이다. 이들로 인해 시카고엔 남아도는 호텔방이 전혀 없었다. 숙박료가 아니더라도 이들이 5일 동안 하루 세 끼 식사하고 지역 관광하고 쇼핑하는 데 드는 비용을 계산해보면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 여기에 ASCO 총회에 내야 하는 참가비만도 1인당 1000달러에 가깝다. 또 왕복 항공료까지 감안하면 하나의 행사를 치르면서 발생하는 비용의 총액은 나 같은 비즈니스맨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액수다.

이렇게 큰 규모의 행사들을 우리나라에서 치를 수는 없을까. ASCO 총회는 10년째 시카고가 독점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한 참석자를 수용할 수 있는 매코믹 플레이스 덕택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출장에서 돌아오는 즉시 인천의 한 호텔에서 1박을 하고, 다시 제주도로 가서 1박을 해야 했다. 그곳은 한산했다. 제주도의 컨벤션 센터들도 텅 비어 있었다. 오는 11월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도 낭보이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행사를 불러들이는 방법이 뭘까. 어떻게 해야 그런 대규모 행사들을 스위스나 미국처럼 한국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하나는 계속 나가야 하고, 하나는 계속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은 스포츠뿐 아니라 의학·경제·문화 등 각 분야에서 엄청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이런 성과들을 바탕으로 한국의 우수한 인력과 인재들은 세계로 계속 나가야 하고, 컨벤션처럼 지역 실물 경제에 바로 영향을 주는 산업들은 자꾸 한국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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