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항공모함을 공격한다. 총원 전투 준비.”
2004년 6월 다국적 연합 기동 훈련 림팩이 벌어지고 있는 하와이 인근 해저 수심 100m 아래. 초계구역인 100㎞~100㎞ 해역 내로 가상 적군(홍군) 전단이 들어왔다. 장보고함의 이진규 함장은 지시를 내렸다. 미 항모 존 스테니스함을 주축으로 한 홍군 10여 척 전단이 3일 사이 인근 섬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첩보가 주어져 대기하던 중이었다. 바로 옆 해역에도 일본·호주·칠레 잠수함이 은밀히 초계하고 있었다.
‘유령함장’ 이진규 예비역 대령은
이 함장의 지시에 따라 장보고함은 소음이 가장 심한 ‘구축함의 스크루 밑’으로 이동했다. 항모 앞으로 이동하는 구축함의 함미 스크루 밑 100m 아래로 잠항했다. 그러면 구축함 스크루의 소음 때문에 전단이 소나로 적극 탐지해도 장보고함을 찾아낼 수 없다. 조용히 조용히 50㎞를 6시간에 걸쳐 이동했다.
이윽고 밤 9시30분쯤. 미 구축함과 항모 사이의 어두운 해역으로 장보고함은 은밀히 떠올랐다. 항모 7000야드(630m) 앞 파도 위로 잠망경을 올린 뒤 지휘부에 ‘가상 어뢰 공격’ 보고를 했다. 항모 위로 초계기가 날고 있었지만 눈치를 못 챘다. 그렇게 2주일 동안 수십 개 가상 국면에서 장보고함은 36척을 격침시켰다. 인근 거리에서 잠망경으로 피격 대상 함의 사진을 찍으면 공격 증거로 인정됐다. 2주 작전 종료 뒤 지휘부가 모이는 자리에서 격침 당한 배의 함장들은 머쓱해했다. 그리고 이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그는 ‘유령 함장’이 됐다.
그는 또 ‘퍼펙트 장보고’라는 이름도 얻었다. 잠수함 관리가 완벽했기 때문이다. 진해에서 괌까지 10일 이동. 그리고 하와이까지 20여 일 잠함 이동과 2주 기동 훈련. 그 과정에서 장보고함은 한 번도 말썽을 안 일으켰다. 일본·호주·칠레에서 온 잠수함들은 고장으로 귀환하기도 하고 다른 잠수함 초계구역으로 들어가는 말썽도 일으켰다.
그는 2006년 바다를 떠나 영국 무관으로 갔다. 그리고 2009년 12월 31일 퇴역했다. 5년 더 대령으로 근무할 수 있는데도 그랬다. ‘군 개혁’을 염두에 두면서 잠깐 잠수함 관련 회사에서 일했다. 그러다 천안함 사태가 터졌다. 회사를 때려치웠다. 그리고 ‘국방 선진화 리포트’에 매진했다. “천안함 사태가 아니라면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