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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끝 화염속에서도 희망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네베이 샬롬/와하트 알 살람=이훈범 특파원] 마이르(유대인)와 아하드(아랍인)는 여섯살 동갑내기 단짝 친구다. 티격태격 다투는 듯하다가도 이내 깔깔거린다. 마이르가 히브리어로 소리치면 아하드가 아랍어로 대꾸한다. 그래도 막힘이 없다.

기자:너희들 싸운 적 있어?

아이들:(잠시 멈칫하다)매일 싸우는걸요.

기자:왜?

아이들:(서로를 가리키며)얘가 못되게 굴어서요.

기자:그런데 왜 같이 놀아?

아이들:친구니까요.

마이르와 아하드가 사는 마을은 이름이 두개다. 네베이 샬롬 또는 와하트 알 살람이라 불린다. 각각 히브리어와 아랍어로 '평화의 오아시스'란 뜻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마을은 유대인과 아랍인이 함께 모여 사는 마을이다. 이스라엘에서 유일한 곳이다. 현재 40가구가 살고 있으며 양측 인구가 정확하게 반반씩이다. 새로 입주하기 위해 집을 짓고 있는 10가구도 마찬가지다.

"갈등이 왜 없었겠나. 서로를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더 큰 어려움은 외부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적들하고 함께 산다고 욕하는 사람도 많았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입주 신청자들이 많아 주민투표로 선정해야 할 정도다." 마을발전 담당위원인 아랍인 압데살람 나자르(53)의 설명이다.

30년 역사를 가진 이 마을은 자체적으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마을의 초석을 놓은 브루노 후사르 신부(1966년 작고)는 "평화를 정착시키는 길은 2세 교육밖에 없다"는 신념을 가졌고, 이를 유지로 남겼다.

2백90명의 학생 중 90% 이상이 이웃마을 학생들이다.

모든 학급에는 유대인과 아랍인 두명씩의 교사가 있다. 각자의 언어로 번갈아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 수도 반반씩이다.

"처음엔 유대인과 아랍인 아이가 다투면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서로 편을 갈라 싸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유대인 아이가 아랍인 아이 편을 드는 경우도, 그 반대 경우도 많다." 유대인 유치원 교사 엘리자 샤훌(49)은 "아이들을 보면서 이 땅에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 마을은 텔아비브·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라말라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비잔틴 시대 이후 경작된 적도 없고, 67년 이전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을 막기 위한 '무인지대'로 남아 있던 곳이다. '친구니까 싸울 수도 있고 싸웠다고 원수가 되지도 않는' 마이르와 아하드 같은 평화의 싹들이 그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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